영국과 미국공군은 1945년 2월 13일 밤부터 사흘동안 번갈아 드레스덴을 '용단폭격'했다. 그때마다 고열의 화염폭풍이 도심을 집어삼켰다.군수품 공장과 기차역뿐 아니라 주택,상점,호텔,술집,교회 ,성당,병원,오페라하우스,영화관,동물원,학교,엘베강의 선박까지 도심 반경 3길로미터 안에 있던 모든 것이 터지고 녹고 부서지고 불탔다. 사망자만 20만 명이라며 연합국을 비난한 나치 정부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 폭격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몇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전쟁이 끝나고 여러해가 지난 뒤에도 무너진 건물에서 시신이 나왔고 지하 방공호 한 군데서 1천여 명의 시신을 찾은 일도 있었다. 체코 접경지 수데텐란트에서 쫓겨나 드레스덴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던 피난민들은 거주자 통계에 잡히지도 않았다. 당시 시신을 수습한 사망자만 3만5천 명이 넘었다. 독일이 '엘베의 피렌체'라고 자랑했던 드레스덴에는 공장 몇 개 말고는 전쟁과 관계있는 시설이 없었는데도 연합국 공군은 엄청난 양의 폭탄을 투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