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위인도 영웅도 아닌 그에게서 조용하고 성실한, 수줍은 듯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한 미소를 면 혁명가의 초상을 본다. 욕심 많은 세상에서 무욕의 꿈을 이루어보려던 한 몽상가의 초상을 본다. 말년에 남긴 몇 장의 음울한 사진에서는 실패한 혁명가의 우울한 자화상을 본다. 혁명은 그를 배신했고 몽상은 깨졌지만, 적과 동지가 모두 그를 반역자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한국전쟁을 일으킨 전범의 한명인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식민지시대의 그는 온 몸을 던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애국자였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파시즘에 맞서 민중이 주인 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어보려고 애쓴 민주주의자였다. 그 측면만으로도 그의 일생을 되살려보는 의미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