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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논어를 만나 행복해졌다

[도서] 나는 논어를 만나 행복해졌다

판덩 저/이서연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본 책은 중국인 저자가 《논어》를 풀어쓴 인문서이다.
지난해를 추억으로 보내고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려는 지금.
고전 古典을 쉽게 풀어주는 이같은 책이 끌렸다.

논어 원전을 다 읽기는 어렵기에
원작 덕후인 작가의 관점으로 만나보니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술이부작 신이호고 述而不作 信而好古 》
옛것을 복원하고 부흥시키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다, 라는 뜻.

진정한 지식인은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자세로 무언가를 연구할 때 창조적인 계승이 일어난다.
이것이 혁신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학이불염 學而不厭 》
더 큰 만족을 원한다면 허기진 상태로 머물러라.

배움을 즐기는 이들은 만족을 지연시킬 줄 안다고 작가는 말한다.
배움에서 즉각적인 뭔가를 얻으려는 건 일차적인 것이다.
공자처럼 배움을 즐기는 이는 만족을 미룰 줄 안다.

《거일우불이삼우반 擧一隅 不以三隅反 》
번민하지 않는 자에게 열 번을 말해도 소용없다.
번민은 깊이 생각한다는 뜻이다.
공자는 가르치는 대상을 차별없이 받았지만 수업방식은 달랐다고 한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제자가 자신만의 질문을 만들어내게 했다.
문제의식이 없이 공부를 계속하는 건 앎의 진보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이라고
작가는 해석한다.

《부이가구 富而可求 》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파고들라.

이 문구는 제자 안회와의 문답에서 부하는 법에 대한 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결과로써 부함을 얻는다고 공자는 여겼다.
우선순위의 문제인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언제나 벗어나지 말자.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게 부유함도 이루는 방법이다.

《락이망우 樂以忘憂 》
즐거워함으로써 근심을 잊는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
이는 근심도 잊게한다는 뜻이다.

이 몰입은 물론 쾌락이 아니고 의롭고 정직하고 어진 무엇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근심도 잊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자불어 괴력난신 子不語怪力亂神》
공자가 결코 입에 담지 않은 네가지가 있었다.
괴이한 것, 힘쓰는 것, 어지러운 것, 미신을 말한다.
힘쓰는것 이란 폭력, 권력과 전쟁을 뜻한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언젠가는 그 사람 자체를 이룬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지양해야 한다.
심지어 해가 될법한것은 더더욱 입에 담을 가치가 없을 것이다.

《천생덕어여 天生德於予》
공자가 송나라의 권력자에게 암살을 받을 뻔 했을 때에서 나온 대답이다.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었으니 환퇴가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느냐.

사명감과 책임감이 때로는 삶의 위기를 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역경을 마냥 피하지만 않고 정면돌파하는 용기를 작가는 찾고 있다.

《구유과 인필지지 苟有過 人必知之》
다행이구나.
잘못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반드시 알려주니.

공자는 주변인의 진심어린 조언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자신의 체면과 위신에 급급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조언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너그럽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덮어줄 수도 있다.

《사즉불손 검즉고 奢則不孫 儉則固 》
사치스러우면 불손하고 검소하면 고루하다 란 뜻.
이 뒤에는 덧붙은 말이 있다.
불손함보다는 고루함이 낫다 는 것.

고루함은 융통성이 부족하여 마음이 좁은 것이다. 이 성정도 고쳐야 함은 맞지만
불손함의 해악이 더 크다는 뜻이 된다.

여기에서 중용이 나왔다.
사치스럽지 않되 지나치게 검소하지도 않은 자세.
중용은 관대하면서 사물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작가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도울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해석하였다.

이렇듯이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공자는 논어에서 삶의 방법에 대한 철학,
인간으로써의 도리를 말했다.

예전엔 논어를 읽는 게 고리타분 한 일 아닐까
괜히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한자어는 물론 어려웠지만
오래전의 문장치고는 친밀한 글이어서 놀라웠다.
조금만 노력해서 다가간다면 어렵지 않은 내용이 더 많았다.

논어를 좋아하고 대화에서 인용한다고 해서 꼭 꼰대스럽다고는 여기지 않았음 좋겠단 생각이 처음 들었다. ^^

서양사람들이 그리스 신화를 관용구로 쓰고
라틴어 경구를 애용하는 맥락.
어쩌면 논어는 아시아권의 독자들에게
그런 의미일 수 있지 않을까.

논어속에서 지혜로운 생각과
촌철살인 문장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던 책
<나는 논어를 만나 행복해졌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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