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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도서]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홍칼리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어린 시절부터 염원하는 무언가를 정성스레 비는 엄마의 모습을 보아왔다. 정월 초가 되면 엄마는 어딘가를 다녀와 올해 우리 가족은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미래에 자녀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은근히 한마디 씩 흘리곤 하셨다.

 


TV나 영화에서 굿을 하는 무당들은 칼 위에서 춤을 추거나, 진한 화장과 강렬한 표정으로 손님의 점사를 치곤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신을 받아 힘들어하는 무당도 있었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무당도 있었다.

 


아이들이 재미로 보는 귀신 관련 책에서 무당이 등장하기도 했고, 구전으로 떠도는 내림굿을 받은 무당의 이야기는 어쩐지 무섭기도 하면서 가까이 하기엔 멀어보였다. 하지만 답답한 현재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의 한 줄기가 궁금해질 때는 어쩐지 한번쯤은 의지해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에는 무당 개개인의 정과 기가 담긴 괴로움과 기쁨을 기록했다. 독서는 모르는 존재의 방에 들어가 앉아보는 일, 골목을 돌며 버려진 물건에게 시선을 주는 일, 타자에게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8-9p

 


6명의 무당의 방에 들어가 앉아보는 일은 왠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서 책을 읽는 동안 가벼운 긴장감이 맴돌았다. 각 방에서 나는 무슨 이야기를 기대하고, 어떤 이야기를 실제로 들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신의 세계에 맞닿아 있는 사람들은 왠지 그 세계를 볼 수 없는 사람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내림굿을 앞둔 나에게 다가와 등을 쓰다음으며 조용히 힘주어 말했다. "나는 평생 절하고 기도하다가 무릎이 나가고 몸이 다 망가졌어. 신이고 뭐고 일단 너 자신을 잘 돌봐. 너 자신을 아껴야 해." 22p』

 


큰 마음을 먹고 두 눈 감고 들어간 6개의 방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고, 그 곳도 사람사는 곳이라 서로를 아끼고 위해주는 사제 지간이 존재했다. 신을 받는 신내림을 했으나, 무당으로 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신의 말이 모두 옳다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을 예민한게 주시하고 받아들이는 어떤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필연적인데, 공부를 하는 무당들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 우리는 무당을 찾는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속이 상하지만 호소할 수 없는 귀신과 사람들이 무당에게서 미래를 묻는다. 그런데 그들이 예전의 점사를 보던 방식으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하는 위로의 말은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공부를 놓는 순간 함정에 빠지는 것 같아요. 마치 자기 계발 담론이 커졌을 때처럼. 명상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내면의 문제는 내 힘으로 모두 풀 수 있다, 이렇게만 강조하면 생기는 문제를 우리는 알잖아요. 그걸 계속 염두에 두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69p』

 

『기득권의 종교관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해왔다. 종교도 사회적인 것이라 인간이 해석하기 나름이다. 이를 간과할 때 종교는 개인에게 정상성 수행을 강요하는 감시자 노릇을 하게 된다. 하지만 종교는 사회와 동떨어진 별개의 법칙이 아니고, 무당은 사회와 무관하게 신의 자리를 꿰찬 존재가 아니다. 무당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신'의 이름으로 구조적 폭력에 가담하게 된다. 101-102p』

 

 

우리가 종교에 의지하고자 할 때, 우리의 존재가 완전해서 신을 찾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불완전한 존재라고 느껴질 때, 기대고 의지할 곳이 없을 때, 나라는 존재가 부정당할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종교와 신을 찾는다. 그런데 그 곳에서마저 나의 존재됨을 부정당하는 것은 벼랑 끝에 선 사람의 손을 놓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실상 필요한 것은 우리의 희망을 이뤄주는 강력하고 전지전능한 신과 무속인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따사롭게 보듬어 줄 무엇이 아닐까? 현재와 맞지 않은 과거의 해석을 답습하는 것은 오늘날에 맞지 않을 뿐더러, 구조적인 폭력에 가담하게 된다는 작가님의 말은 무당의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손상이 있는 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성찰과 비판 없이, 그저 신의 벌전으로 장애인이 탄생했다고 보는 사고방식은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려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지탱한다.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인 것이 비극이 아니라,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의 규범과 시스템이 문제다. 103p』

 

 

나라의 큰 우환이 있을 때, 알지 못하는 죽음의 혼령을 달래려고 할 때, 우리는 무당을 종종 만난다. 현실의 사람들이 책임만을 따지고, 절차만을 이야기해서, 정작 희생되거나 희생된 자의 마음이 타들어갈 때 무당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들을 다시 바라보니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들여다볼 때와는 다른 모습이 보인다.

 


남과 함께 울어주는 사람, 한을 풀어주는 사람, 위로하는 사람, 남을 위해서 살아주는 가장 낮은 곳에서 이타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들고, 억울한 사람이 많고, 알 수 없는 죽음이 얼마나 많으면 동네동네마다 이들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무당이 하는 일의 핵심은 개인의 과거와 미래를 맞히는 데 있지 않다. 무당은 세상의 좁은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사연에 담긴 고통을 주워 담아 한을 푸는 존재, 소음처럼 들리는 말들을 한데 모아 위로하는 존재다. 무당의 영험함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194p』

 

 

세상을 알면 알수록 정상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정해진 답이 있다고 말하는 그 끝에 따뜻한 공동체와 행복이 있는지 더욱 알 수 없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 껌껌한 오늘에 사는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울어주는 눈, 귀가 있다는 것, 오늘의 시각으로 오늘의 언어로 우리를 위로해주는 입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 본 글은 한겨례 출판에서 하니포터5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받아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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