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북클러버
가녀장의 시대

[도서]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MZ 세대들의 밥 벌어 먹고 사는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슬아 작가님을 보았다. 그 때도 '참 재미있는 사람이네!' 라고 생각했다. 그 뒤에 한 오디오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 실시한 베타 테스트에서 이슬아 작가님의 "가녀장의 시대"를 듣게 되었다. 방송 출연자로서 그와 안면을 (나 혼자) 튼 상태에서, 예고도 없이 그의 글을 접하게 되자 그 반가움은 어느새 친숙함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게 뭐지? 이 작가님 자체가 너무 매력이 있는 거다. 물론 방송에서도 그의 독특한 매력은 느낄 수 있었지만, 본업인 작가로서 만난 이슬아는 그냥 이슬아 그 자체였다. 그를 수식할만한 어구를 찾지 못했다. 그가 쓴 글에서는 그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설정과 현실과 비현실이 마구 섞여서 개미지옥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용할 수 밖에 없었다. 40-41p』

 

우리에게 살림 노동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흔한 일이기에 귀히 여겨지지 않는다. 매일 일상적으로 수행되지만, 익숙해서 금방이라도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전에 들어가보면 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나 혼자만을 먹이고 재우고 일상을 영위하는 것도 익숙해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고 그들의 뒷치닥거리까지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무엇보다 출근과 퇴근이 정해지 않고, 살림노동을 한다고 돈을 주지 않으며,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기에 좋은 말을 듣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슬아는 알고 있다. 우리의 쾌적한 생활과 의식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상이 있어야 했음을…

 

『슬아는 개미처럼 글을 쓰면서도 된장은 담글 줄 모른다. 복희는 글을 쓸 줄은 알지만 그걸 하느니 차라리 된장을 담그겠다고 말할 것이다. 복희의 엄마 존자는 된장 담그기에 도가 텄지만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 각자 다른 것에 취약한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한 채로 살아간다. 98p』

 

각자 특기가 다른 것이다. 복희의 엄마 존자는 된장을 잘 담그고, 복희는 집안일을 잘한다. 슬아는 글은 잘 쓰지만 된장은 담글 줄 모른다. 각자 잘하는 것을 하되, 각자의 수고를 인정하고 거기에 댓가를 지불한다. 그렇게 의지하며 매일을 꾸려간다. 살림을 더 잘해야한다든지, 글 쓰기를 배워야한다든지, 그런 강요는 없다. 존중만이 있을 뿐…

 

『복희의 믹스커피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커피믹스 한 봉 /끓인 물 반잔 /위스키 반잔

그렇다. 복희는 아침마다 위스키 탄 커피를 즐겨 마신다. 위스키의 평균 도수는 45도다. 그렇게 센 독주도 커피랑 섞어 마시면 왠지 술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독주를 마시면서 얼렁뚱땅 시작되는 아침을 그는 좋아한다. 맨정신인 듯 맨정신 아닌 느낌으로 취권을 쓰듯 도인의 솜씨로 아침밥을 차리는 것이다. 221p』

 

가녀장의 시대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복희님이 나의 원픽으로 바로 올라선 순간이다. 절대 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복희씨의 모닝 위스키 커피가 어떤 맛일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고된 시집 살이와 생계를 위한 끝없는 노동 중에 터득한 레시피일 것이다. 나는 이런 모나지 않는 복희씨의 넉넉한 태도가 참 좋았다. 어린 시절 가난해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배우지 못한 한은 없다. 그 한을 자식들에게 염원으로 남기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이 선 자리에서 그냥 항상 최선을 다할 뿐이다.


『"네가 너무 아름다운 걸 써서 그래."

유명 작가의 삶 같은 건 코딱지만큼도 부럽지 않지만 복희는 실감한다. 글쓰기의 세계가 얼마나 영롱한지를. 오랫동안 그 곁에서 고구마 마탕이나 해주고 싶다고 복희는 생각한다. 191p』


슬아에게는 복희씨가 대중의 정서를 대표하는 대중 그 자체다. 그의 귀에 들리는 아이들의 글은 복희씨의 마음을 울리기엔 충분하다. 슬아의 글쓰기 교실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아름다운 글에 감동을 한다. 그 세계 곁에서 서서 복희씨는 본인이 가장 잘하는 고구마 마탕을 한다. 나는 이런 병렬적인 관계들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섞였다가 흩어지는 아름다운 그림처럼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복희는 집중해서 책을 마저 읽는다. 소설은 복희의 눈코입을 통과하며 거의 정확하게 이해받고 있다. 바로 이 사람을 독자로 만나기 위 몇백 년을 살아남았다는 듯이, 소설은 복희의 손 아래에서 영광을 누린다. 234p』


작품이 이렇게 부럽기는 처음이다. 보통은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는 작가에게 빠져 그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일은 너무나 쉬웠다. 그러나 슬아의 표현처럼 작가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는 독자는 몇이나 될까? 각자의 배경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기에 같은 책을 읽더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거나 온전히 이해받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복희같은 독자가 온 힘을 다해 읽고, 자신의 삶을 투영해서 완전한 이해를 하는 과정은 책이 완성되는 과정처럼 보였다.


『"아름다움은 중요한 가치야.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아. 그치만 ……"

아이가 슬아를 본다.

"무엇이 아름다운 건지는 우리가 직접 정할 수 있어. 너는 너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명하게 될 거야." 307p』


나는 슬아, 복희, 웅이의 삶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본 것 같다. 각자의 영역에서 본분을 다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파격적이지만 무척이나 아름답다. 이런 형태의 가족과 삶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것이 이상하거나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지 않을 수 있음도 보여준다.


모부 자식간에 필요한 것은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수직 관계가 전부가 아니라, 얼마든지 협력적인 관계가 될 수 있고, 느슨하게 연결되서 서로를 위하고 아낄 수 있음도 보여준다. 나는 이런 인간 관계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정말 좋았다.


『복희에게 아름다움이란 계절의 흐름, 맑은 날에나 궂은날에나 자라기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 웅이에게 아름다움이란 슬픔과 기쁨의 극치를 다 아는 가수의 목소리. 밥하고 글쓰는 두 여자. 슬아에게 아름다움이란 단정하고 힘있는 언어, 그리고 동료가 된 모부의 뒷모습. 308p』


나에게 있어 일상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복희씨가 알려준 위스키 커피를 제조해 마시면서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가녀장의시대 #이슬아 #이야기장수 #이슬아포에버 #복희만세

#8랑PAL랑 #MKYU_북클럽 #MKYU_부산공식북클럽 #예스24_북클러버

#내돈내산 #서평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