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골함이란 몸이 약해 종종 아픈 상태를 뜻한다. 골골함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서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몸 상태와 상관없이 건강한 몸 able-bodieness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사회 규칙에 맞춰 살아간다. (17p)』
"골골한 청년들"을 읽는 내내 작년에 읽었던 "젊고 아픈 여자들 (미셸 렌트 허슈, 마티)"이 떠올랐다. 동시에 건강한 청년들의 모습을 이미지화한 한 제약 회사의 자양강장제 광고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던 청년의 나이를 한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자연스레 생각이 났다. 그 청년 중에 나도 있었다. 이석증 발병 후, 증상이 발생하면 병가를 써야 했던 과거의 나도 있었다.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증상이 나타나면, 그저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 나오는 인터뷰이들에 비하면 그 강도가 약하고, 발생 횟수도 드물고, 하루 정도 통원치료를 받으면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의 나는 내 몸을 통제할 수 없는 청년이라는 생각에 꽤나 좌절을 했다.
『우리 사회는 최저임금을 받는 곳이 아닌 좋은 일자리도, 골골하고 아픈 몸이 아닌 건강한 몸도 개인의 노력과 의지, 책임의 문제, 나아가 굳은 의지로 노력한 개인적 결과이자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몫으로 여기곤 한다. 사회적 대책을 논의하기보다 개인을 단속하는 것이다. 64-65p』
그런데 건강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이석증 발병의 영향도 있었지만, 내 몸을 통제할 수 없었던 임신 기간에 특히 더 고민하게 되었다. 극 초기에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있던 그 시기는 나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발생했다. 출장을 가던 길에 갑작스러운 현기증과 오심, 구토로 일정을 급하게 취소하고 병원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던 기억도 난다. 임신이 지속되는 기간에 빈번해지는 배뇨 문제, 허리 통증, 수면 시간 증가는 내가 노력을 해서 개선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였다.
『몸의 불완전함과 허약함,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며, 아픈 이를 비난하지 않고 어떤 형태의 돌봄이 필요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소한 물건이나 손짓, 돌봄이라 하더라도, 아픈 이가 홀로 그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외롭게 느끼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102p』
적어도 나의 상황을 이해받을 수 있는 직장 환경이었기에, 눈치는 덜 봤지만 그런 돌발 상황 발생하면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항상 있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같이 일을 하는 환경이었기에, 아프거나 건강의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 대해 좀 더 관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프면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상황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근태로 체크되는 근로자의 성실함은 다음 재계약이나 인사고과에 분명히 영향을 주었다. 모두가 어딘가 조금씩 아프지만, 드러내지 않을 정도라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수전 웬델 Susan Wendell의 주장처럼, 만성질환이나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총체적으로 무능력하지” 않다. 일터에서 휴게 시간과 휴게 공간을 적절히 제공해 준다면, 몸의 상태에 따라 업무를 조정하고 일할 수 있다면, 이들은 아파도 참고 일하지 않아도 된다. 118p』
우리 모두는 있지도 않은 표준의 건강을 가진 사람이 노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노동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온전한 한 사람의 몫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에게는 배려와 유연한 노동환경이 전제되어야 하는 일이다. 적절한 휴게 시간을 제공하여 컨디션이 갑자기 하락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 주어진 일을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게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은 골골한 청년들이 일상을 지킬 수 있는 좋은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건강을 희생해야 하는 일터”는 좋은 일터가 아니라며, 만성적으로 아픈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을 보살피며 일할 수 있기를 바랐다. 76p』
열정을 짜내야만 돌아가는 일터는 분명 좋은 일터는 아닐 것이다. 건강했던 사람들이 아플 수밖에 없고, 그 고통을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리는 분위기가 팽배한 일터도 좋은 일터는 아닐 것이다. 포션처럼 고카페인 음료를 들이켜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청년들은 이미 아프거나 곧 아플 예정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져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할 수 없는 골골한 몸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의 고통을 숨기며 일터로 간다. 과연 이들의 문제를 개인의 관리 부족으로만 남겨야 할까? 우리 모두가 건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문화를 만들 수는 없을까?
* 본 글은 오월의봄 도서를 지원받아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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