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론의 효시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젊은 시절에 쓴 이어령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를 탐구하는 긴 여정을 걸어왔다. 60년간 산문, 시, 소설, 희곡,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로 한국인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자신의 관점과 문제의식을 계속해서 수정하고 보완해왔다. 그의 유고작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는 그런 의미에서 그의 문학적 유산으로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중 두 번째 책인 《땅속의 용이 울 때》는 한국 문화론의 시작점이었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 문화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흙과 땅이 상징하는 생명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흙 속에 사는 지렁이를 '땅속의 용'(지룡)이라고 부르며, 인류와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숨은 영웅이라고 말한다. 무기물을 유기물로 바꾸어 생명이 살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내는 지렁이는 한국인들에게도 오랜 세월 동안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전달해왔다.
저 알 수 없는 지렁이 울음을 듣고 싶은 간절함. 깊은 땅속 흙의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겠어요? 우리 농촌의 저 땅, 혹은 흙 아래에서 울려오는 소리. 숲에서 울려오는 것도,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도 아닌, 땅속에서 울어 나오는 저 소리, 그게 지렁이 울음이에요.
이어령 선생님은 지렁이의 삶을 통해 한국인들의 삶과 문화를 비추어보고자 한다. 지렁이가 땅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흙을 먹고 배설하는 것을 '흙의 순환'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한국인들의 '흙의 정신'과 '흙의 문화'의 근간이라고 말한다. 흙과 땅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가지고 있으며, 흙과 땅을 통해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왔다고 주장한다. 흙과 땅을 이용하여 다양한 전통과 문화를 창조해낸 사례들을 들어 보여주며, 흙과 땅이 한국인들의 창조성과 감성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한국 문화론의 핵심 개념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재해석하고 확장한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가 한국인들의 삶과 문화의 본질을 담고 있는 말이라고 말하며, 흙 속에 숨어있는 생명력(몸)과 바람 속에 날아가는 자유로움(정신)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인들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살아가면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왔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특별한 정체성과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어 그는 우리들에게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살아가는 방식을 계승하기를 호소한다.
그리고 한국 문화론의 선구자로서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분석과 해석을 제시한다. 한국 문화의 역사와 전통, 변화와 발전, 문제와 과제 등 다양한 측면을 조명하며, 우리 문화의 향토성과 내면화를 보여준다. 그는 우리 문화를 단순하게 정의하거나 분류할 수 없다고 말하며, 우리의 정서는 항상 변화하고 성장하는 살아가는 존재들에 달려있고 아울러 과거의 생명을 향한 갈구를 기억하길 바라고 있다. 그는 우리 내면의 정서를 이해하려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있는 생명력과 자유로움을 인식하고 돌아봐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어령 선생님의 독특한 서사와 언어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는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문체(-요)로 작품을 구성하며, 시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언어로 작품을 전달한다. 지렁이와 같은 평범하고 작은 존재를 통해 거대하고 깊은 주제를 다루며, 단순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통해 복잡하고 낯선 문화를 분석한다.
선생은 또한 독자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고, 은유와 비유, 상징과 암시 등을 통해 넌지시 건넨다. 독자들에게 작품에 대한 해답을 강압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그가 풀어놓은 천연덕스러운 물감에 물들게 한다.
이어령 선생님의 "땅속의 용이 울 때"는 한국인의 삶, 눈물과 웃음으로 굴곡진 시대와 사물(기차), 황토, 한(限) 등을 사용해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정서 속에 새겨있는 저릿함을 알려준다. 한국인들이 근대화와 산업화, 전쟁과 분단, 민주화와 개방 등의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기차를 통해 한국인들이 시간과 공간, 속도와 이동, 발전과 파괴 등의 개념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했는지를.
시골 흙내 나는 황량한 황톳길로 우리네가 지닌 자연과 인간, 생명과 죽음, 고향과 타향 등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는지를. 마지막으로 한을 통해 지난한 굴곡진 역사. 고통과 억압, 저항과 반항, 용서와 화해 등의 감정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고 극복했는지를... 이어령 선생님 특유의 사려 깊고 현학적인 가르침으로 세대를 이어갈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한국 문화론의 거장이자 한국문학의 명가인 이어령 선생님의 "땅속의 용이 울 때"를 추천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