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야 샘슨의 "88번 버스의 기적"은 노인 프랭크의 60년 전 그녀 즉, 일종의 '첫사랑 찾기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우정, 사랑, 꿈을 버무려 낸 작품입니다. 저자는 버스라는 현대인에게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으로 연결고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세대 간 문화와 성격이 다른 인물들을 등장시킵니다.
과거의 주눅든 자신에 격려를 주고 간 60년 전 그녀를 만나기 위해 88번 버스를 타는 프랭크
가족에겐 주눅 들고, 8년 사귄 남자친구에게 차인 소극적인 리비(엘리자베스 니콜라스)
작은 산처럼 뾰족하게 머리카락을 일렬로 세운 검은 가죽 재킷의 펑키 한 남자 딜런
이들의 '60년 전 그녀'라는 공동주제로 리비와 딜런은 노인 프랭크에게는 친절과 호의를, 리비는 딜런을 경계와 편견으로, 딜런은 호기심으로 리비와 결말을 알 수 없는 모호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노인 프랭크는 60년 전 버스에서 만난 빨간 머리 여성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녀의 말에 영향을 받아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적어준 전화번호가 적힌 버스 티켓을 잃어버리면서 그녀와의 인연은 의도치 않게 끊어집니다. 그 후 프랭크는 연기자로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50여 년간 연극배우를 하며 나름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왔죠. 하지만 나이가 들어 기억이 흐릿해지면서 다시 젊은 날의 주눅 든 애송이로 돌아가는 걸 자신도 느꼈는지, 그는 60년 전 그녀와의 잠깐의 만남에 더욱 집착하게 됩니다. 그녀와의 만남이 그에게 트리거였으니까요.
이 소설에서 프랭크는 60년 전 강렬한 인상으로 삶을 능동적으로 전환하도록 격려해 준 빨간 머리의 그녀를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버스에서 그날의 만남을 재현하려 합니다. 그런데 잠시 지나친 인연이라 치부할 수 있는 잠깐의 만남의 무엇이 그를 사로잡았을까요? 세월로 사그라들고 있는 기억의 성에서 여전히 굳건한 빨간 머리의 그녀는 프랭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도대체 무엇이기에 남자친구에게 쫓겨난 리비의 뒷모습에서 60년 전 그녀의 모습을 봤을까요?
프랭크는 아마도 그녀를 통해 자신의 삶에 희망과 방향 즉, 격려를 받았을 겁니다. 그래서 그의 삶도 변했으니까요. 그녀를 만난 순간 첫눈에 반하고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말과 행동에 감명받아 그는 변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리고 그녀가 자신에게 준 버스 티켓을 잃어버리면서 그녀와의 인연이 끊어졌다고 생각하지만, 프랭크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오랫동안 88번 버스를 기다리며 그녀를 다시 만나는 희망에 가슴이 설렙니다. 프랭크는 그녀가 언젠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던 거죠. 그는 여전히 그녀가 주었던 선물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니까요.
88번 버스의 기적은 절망적이고 우울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독자에게 격려를 하는 소설입니다. 가족과 친구, 연인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좀 더 능동적으로 자신을 성찰하길 격려하죠. 저도 그렇게 읽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은퇴를 앞둔 노년의 보안관이 생각나더군요. 잔인한 폭력에 맞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한계와 무력함을 인정하고 쓸쓸히 물러나는 그의 모습이. 프랭크 역시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왔지만 결국 나이 듦에 따라 쇠락해지는 정신과 육체 때문에, 자기 숙제를 젊은이들에게 맡깁니다. 그런 프랭크의 모습에서 퇴장하는 보안관이 겹쳐졌다면 나만의 지나친 비약일까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