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전부 교체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문구의 띠지를 보는 순간 단 한권의 책이 연상된다. [데드맨]. 연속적으로 발견되는 시체는 몸을 이루는 요소들이 하나씩 사라져있다. 여섯번의 연속적인 사건에서 발견된 시체에서 나온 조각들을 모아보면 새로운 한 사람이 완성되는데 머리만 남아 되살아난 사람.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장기이식분야가 예전보다는 훨씬 더 많이 발전했다. 인공장기도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장기가 아닐까. 수요자는 많지만 공급자가 적기에 항상 대기자는 넘쳐나고 그로 인한 범죄까지도 알게 모르게 저질러지는 것이 현실이다.
몸의 모든 부분이 이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도마뱀과는 다르게 사람은 사지는 붙일수가 없고 새로 나지도 않는다. 물론 이 분야도 연구중이어서 먼 미래에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사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뇌는 어떨까.
머리를 다치면 사람은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 장기는 살아있지만 뇌기능이 활성화 되지 않는 것이다. 뇌가 죽은 상태를 뇌사라 판정하고 그런 경우에는 죽은 것이라고 본다. 만약 뇌이식이 가능하다면 뇌사 환자들도 더이상 죽은 것이 아니게 되는 걸까.
총에 맞은 채로 실려왔고 부위가 머리였던 탓에 죽을 뻔 했지만 세계 최초 뇌이식환자가 되어 살아났다. 일단 살아난 것은 기뻤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전과는 다른 것을 느끼게 되는 나루세. 그저 조용히 자신의 일만 하는 착한 성격의 나루세였지만 현장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게 된 나루세는 의지와는 다르게 행동을 하고 말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큰 사건을 겪고 사람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더니 그러한 것일까 하고 생각을 해보게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뇌이식이라는 전제조건이다.
산다는 건 발자국을 남기는 거지. (270p)
심장이식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에서 그런 설정을 할 때가 있다. 심장 기증자의 아내나 연인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이다. 자신은 처음보는 사람이지만 심장이, 즉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이끌렸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심장은 단지 사람의 몸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뿐 그런 감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설정을 했다는 것은 단지 픽션이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심장과 달리 뇌라는 조직은 생각을 하고 몸의 전반적인 기능을 담당하는는 복잡한 조직이다. 전체를 다 드러내고 다른 사람의 뇌를 넣은 것은 아니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남의 뇌가 즉 뇌조직이 흡수가 되면 그 사람은 바뀌게 되는 것일까. 이런 설정 또한 픽션이라서 가능한 설정일까.
가정을 해보자. 만약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가 한명이 있고 몸이 짓눌려서 더이상 회생불가능한 환자가 한명이 있다고 해보자. 분명 별개의 사람들이지만 한 몸에 한 머리를 더하면 단 한명은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멀쩡한 머리에 멀쩡한 뇌를 붙여서 한명을 살렸다치자. 그 사람은 몸을 주인으로 봐야 하는 걸까 머리를 주인으로 봐야하는 걸까. 얼굴은 내가 아는 사람이건만 그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것이 된다. 우리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을 중시해야하는 건가 그 속의 내용을 봐야하는 건가.
원제인 '변신'을 [사소한 변화]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림을 좋아하던 그가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극히 사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착하기만 하던 그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도 지극히 사소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함들이 모여서 큰 변화를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몸이 변하는 변신이라는 원래의 제목처럼 말이다.
덧붙임. 히가시노 게이고는 90년대 초반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나루세가 데이트 하면서 보는 영화는 <빽튜더퓨쳐>이다. 지금의 나이 어린 독자들이 이 영화를 알기나 할까. 아니 나루세의 여자친구가 언급하고 있는 '마이클 제이 폭스'가 누구인지 알기나 하려나. 세월의 무상함만이 나를 관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