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식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산 사람은 어떤 때라도 먹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비록 이런 곳에서라도. (36p)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책이 있다. 여러번 읽었던 책이다. 책 내용은 둘째치고 그 제목이 참 마음에 콕 박혀서 그 제목 때문에 여러번 다시 손에 들었었다. 죽은 자들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육체적인 몸에서 떠나는 순간 고통이나 슬픔같은 그런 인간적인 감정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살아있는 사람들만, 살아남은 자들만 슬프고 고통스럽고 서럽고 아쉬울 뿐이다. 장례식은 그런 살아남은 자들을 달래주는 그런 일종의 의식행위다.
이력서를 내는 족족 다 떨어지는 그녀 ,미소라가 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일에 지친 그녀는 마침 자신이 전에 일했던 반도회관의 선배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바쁘지 않으면 도와달라는 것.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있었던 그곳으로 돌아간다. 장례식장으로 말이다.
<출처:http://blog.naver.com/octagonman/20152061380>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난 영화가 있다. 바로 <오쿠리비토>라는 제목의 일본영화다. 영어 제목으로는 <굿바이> 제목 그대로 이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첼리스트였던 남자가 장례를 집도하는 염습사가 되는 이야기를 그렸던 영화. 처음에는 첼로소리가 좋아서 그 음악을 듣고자 했던 영화였는데 어느 틈엔가 감동적인 스토리에 빠져들었더랬다. 우리네와는 다른 장례문화이기는 하지만 죽은 자를 성심성의껏 대해준다는 그 마음이 뭉클하게 남아있었다.
단지 영혼이 보이거나 기를 느끼는 것뿐이다. 실제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29p)
'장례'라는 공통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이 책에는 영화와는 다른 조건이 하나 더 주어진다. 그것은 미소라가 죽은 자를 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언니가 옆에 있다. 마구 뛰어난 능력은 아닌지 언니가 있다가 사라져도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면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어려운 위기에 놓인 그들만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간다.
수습직원은 성장분투기라해도 좋고 조금은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라 해도 좋다. 그 판타지스러움이 돌출되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실제로도 그런 그녀가 반도회관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장례식. 할머니를 시작으로 동생이 그리고 할아버지와 이별을 했다. 물론 시간적인 간격을 두었기에 그나마 회복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 또 어떤 이별이 남아있을지 잘 알고 있다. 내가 이 세상과 이별하는 게 먼저일지 아니면 또 다른 사람들과의 이별이 먼저일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인간이 자신의 출생을 선택하고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죽음 또한 언제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죽음을 제외하면 보통 대부분은 다 그러하다). 머지 않아 이별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을까. 머지 않은 때에 조용히 그리고 한점 후회 없이 이별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