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들이 내려왔다.그동안 숨 죽이고 있던 좌익들은 드디어 그들의 세상이 왔다면서 활개를 친다. 숨어 다니던 그들은 정정당당하게 활보한다. 이제 이 나라가 공산주의로 물들 날만 기다리면 된다. 대한민국은 없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 모든 것을 처리하고 도망가기에 바쁘다. 이럴 줄 전혀 예상도 못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곳곳에 좌익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김일성이란 존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석구처럼 아저씨도 아무 편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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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이냐고 물었을 때 보통의 일반 시민들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했을까. 인공기로 위장하고 들어온 그들 앞에 국민들은 우와 공산당 환영한다고 외쳐야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하나뿐인 목숨을 유지하려면 말이다. 물론 군인들이야 주민들의 사상을 시험해 본다고 했을지 몰라도 투철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이쪽 편에 붙었다 저쪽 편에 붙었다 하는 것은 정말 살기 위한 발악이나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그렇게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가. 순진하고 보통의 사람들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일정 때넌 일정 때라고 끌어가고, 인공 때넌 인공 때라고 끌어가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라고 끌어가고, 나라라고 생긴 것은 해주는 것 암것도 웂음시로 못 묵고 못 입고 보존해 온 생목심덜 끌어다가 쥑이는 일만 헌당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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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가 선뜻 나설 수 있겠는가. 전쟁이지 않은가. 어떻게라도 살아보려고 했던 목숨을 내놓고 덤벼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가정들마다 답답한 현실 앞에 목놓아 울고 싶은 마음은 다 같았을 것이다. 일본의 지배 아래 있을 때도 공산당이 있을 때도 끌려갔던 목숨들은 대한민국이 되어도 그랬고 이제는 전쟁 앞에 자신들의 목을 디밀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금세 이 전쟁이 끝날 줄 알았을 것이다. 죽죽 밀고 내려오면 그들을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 미국이 도와줬던 한국은 그들이 남기고 간 무기도 하나 없었는데 말이다. 우리가 북한을 도발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니 변변찮은 무기도 하나 없는 채로 적을 마주하게 생긴 그런 처지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었는지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다시 공산당들은 한 지역으로 몰리게 된다. 이제야 끝이 나나 싶었지만 이제는 중국에서 전쟁에 참여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해전술을 펼친다. 그 어떤 무기보다도 무섭다는 사람의 장벽이다. 중국은 최대의 인구수를 자랑하고 있으니 그것이 무기화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핏빛으로 붉은 그 완장은 어디서나 눈에 잘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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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완장은 희미해져 간다. 피처럼 빨갛던 혁명과 투쟁을 상징하던 완장. 그것만 있으면 으스대게 만들었던 그 완장. 그것은 이제 죽음으로 향하는 표식이 되어 버린다. 인민군가를 부르던 아이들은 이제 다시 국군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이 노래가 익숙하다는 것은 어찜인가. 아마 지금의 어린 세대들은 전혀 알지 못할 그런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