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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도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마친 정지아 작가는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고,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등을 펴냈다.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올해의 소설상, 노근리 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다. 이 소설은 정지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첫 문장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순사건 직후 입산한 빨치산인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인물인 아버지는 민중 속에서의 혁명을 위해 위장 자수를 했지만, 조직 재건 운동을 하다 투옥되어 6년간 감옥생활 후 출소한다.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사시가 되고, 아이도 한약을 먹고 겨우 딸 하나를 낳았다. 주인공인 ‘나’는 그 6년 동안 아버지와의 관계가 끝나고, 빨치산과 딸의 관계로 재정립되었다고 삶의 고난을 토로한다.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장소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이다. 조문객으로 찾아온 사람들과 아버지와의 얽힌 이야기들이 펼쳐지면서 아버지의 진짜 삶의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구례읍과 읍에서 걸어서 두 시간 남짓 거리의 첩첩산중에 있는 ‘반내골’이 주 무대로 등장한다. 한 권의 소설을 읽었지만, 여러 편의 이야기를 읽었다.      

 


 

태백산맥이나 남부군 등의 소설을 두 차례씩 읽어대던 젊은 날에는 팔을 걷어붙이고 지리산에라도 따라 들어가고 싶었다. 아버지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민중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며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의 일을 도우며 살았던 까닭에 아버지한테 신세 지고 살았던 민중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딸 하나뿐인 상주라 걱정했던 주변인들의 걱정을 깨끗이 지웠다.      

 


 

산에서 내려온 아버지는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온 동네의 어려움을 자청하여 해결하고 다닌다. 보증을 서기도 하고, 잘 곳 없는 사람을 데려와 재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마늘을 도둑맞기도 하고, 빌려준 돈을 떼이기도 한다. 아내와 딸의 원망에도 “오죽하면 그랬겠냐?”, “사회주의의 기본이 뭐여?”, “무엇을 위해서 산에 들어갔었냐?” 등의 말을 앞세워 입을 막았다. 그들은 죽자고 농사를 지었지만 그렇게 저렇게 만들어진 빚 갚기에 바빠서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빨치산 경력은 조카들의 취업이나 학업의 앞길에도 본의 아니게 걸림돌이 되어 친척들로부터도 냉대받으며 외톨이가 되어야 했다. 주인공 ‘나’도 빨치산의 딸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늘 무등을 태워 주었고, 온 세상이었던 어린날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들이 묘사될 때, 딸을 향한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정이 저러할 수도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어른이 된 ‘나’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시간강사 생활을 하면서도 부모님의 유일한 자식으로서 어려움을 돕고자 애를 쓴다.      

 

 

아버지의 뼛가루를 동지들은 아버지의 주 활동무대였던 백운산에 뿌리자고 했지만, 주인공은 아버지의 산 생활이 고작 4년뿐이었고, 실제로 살았던 장소는 고향 일대였으니, 아버지가 다니던 길목 여기저기에 뿌리는 게 맞는다고 판단한다. 백운산 골짜기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싶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딸의 손에 의해 자신이 생전에 다녔던 곳곳에 뿌려지면서 아버지는 진정한 해방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었던 아버지는 그렇게 해방되었다. 

 


     

또한, 자신의 신념에 갇혀 오로지 민중의 삶을 위해 애쓰며 살았던 아버지는 그동안 베풂을 받았던 지인들의 환송을 받으며 생의 감옥에서 탈출하여 해방을 맞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를 씌워 준 부모를 원망했던 마음을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용서를 빌고 아버지의 진실한 삶을 이해하며 눈물을 흘리는 딸과 마주하며 나조차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148P)

“우리가 싸워야 할 곳은 산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불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밥 먹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싸우기도 하는 저세상이라고”(255P) 그렇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자식들은 모두 제 부모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기본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진리인 것 같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라면 진짜 부모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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