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상상으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시 쓰기. 어딘가로 떠나고 있는 사람이 한 차례 뒤돌아본다. 그것처럼 출발에서 떠났다가 온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하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듯한 시 쓰기 방식이다. 출발해서 여행한 후, 원점으로 돌아오고 있다.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섰다. 팔과 다리, 생각을 늘려 하늘로 바다로 더듬으며 여행하다 몸을 다시 줄여 처음의 몸이 된다. 발을 떼어 떠나지 못하고 현실에 붙잡혀 있는 불안 같은 것도 느껴진다. 현실은 쉽지 않아서 시속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 존재는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으로 재차 읽으며 깊은 슬픔을 찾으려 했지만 딱히, 큰 아픔은 없는 듯 읽혀 안심되었다.
현대 시의 창작이 첫 행이 둘째 행을 만들고 둘째 행이 셋째 행을 만들어서 결론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게 그 특성인데 유희경 시인의 『이다음 봄에 우리는』은 많은 시편이 처음과 끝이 맞닿은 수미쌍관의 시 쓰기다. 예를 들면 「오래된 기억」은(61P) 창문에서 시작해 전화로, 개 짖는 소리로, 네가 살고 있는 도시로 갔다가 다시, 개 짖는 소리, 창문으로 끝난다.
「쓸모없는 날」에서(32P) 나무가 되고 싶어 손을 화분에 묻고 싶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우선은, 손을 화분에 심고 문밖에서 지나가는 지인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싶어 한다. 점점 자라면 더 큰 화분이 필요한 곤란한 상황이 된다. 결국 손은 화분에 심지 않기로 한다. ‘미래는 충분히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재다능한 시인이 화분 따위의 작은 세상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미래에서 마음껏 능력을 펼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시인의 생명력을 한층 더 높이는 삶의 풍경이다. 그저, 나무가 되고 싶은 시인이 화분에 심기고 싶은 마음을 접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반갑다. 다른 시들에서도 나무가 자랐으면, 나무가 있었으면 하는 부분이 많아서 나무를 좋아하는 면면이 보인다.
「바람이 언덕을 넘어 불어온다」에서(62P) 화분에 자꾸 무언가를 심고 싶어 한다. 그는 무엇을 살려내고 싶은 것이다. 심어서 길러서 꽃 피워서 열매를 맺고 싶은 것이다. 넓은 들이나 자그마한 땅도 아니다. 소박하게 화분에 심고 싶어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바람이 언덕을 넘어 불어오고 있는데도 그는 무언가를 심고 싶어 한다. 「벼린다는 말」(96P)처럼 심고 열매를 기다린다. 비에 대한 시들이 많은 것도 열매를 키우기 위한 물 주기로 해석된다.
무엇이 어떠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고 싶다. 생각을, 그런 것들을 아직도 꿈꾸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마다 무언가를 상상하는 모습이 희망 같아서 좋았다. “같이 걷기 좋은 날씨야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오송」에서)
지독한 현상
말을 잇지 못했다 떨어뜨린 모양이야 그러나,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너는 물어보지 않는다 있어 그런 말이 하고 대꾸할 것 없이 그냥 주워야 하는데 그 말은 아주 까맣고 지금은 너 무 밤이야 깜깜해 보이지 않는다
- 중략 -
잇지 못한 저편에 너는 아직 말이 없다 너도 떨어뜨렸나 떨어뜨려 잇지 못하고 있나 그 말은 어떤 색일까 딱딱해서 바닥 위로 튀어 올랐다가 도르르 책상 아래로 까만 어둠 속 으로 굴러간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느라고 한참 나는 그대로 있었다
- 「지독한 현상」 중에서 (22P)
말을 잃은 사람, 말을 잇지 못했다 등 말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 술술 말이 나오지 않을 때 막막해하는 것 같다. 말을 잘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는 더 그럴 것 같다. ‘지독한 현상’이라고 표현할 만큼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고 싶은 것 같다. 이야기에 대한 시들이 몇 편 있다.
줄 바꿈도 마침표도 띄어쓰기도 정해진 형식도 없다. 그저 썼고, 읽으라 한다. 읽고 생각하라고 한다. 독자에게 맡겨진 몫이 크고 넓다. 자유로운 그를 따라서 생각을 펼쳐 떠돌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이 책을 다 읽은 나의 느낌 한 문장은 이것이다. “이다음 봄에 우리는” 꽃 피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