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상혁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3)를 읽고
김상혁 시인은 2009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다만 이야기만 남았네』,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이 있다. - 작가 소개에서
친구야, 안녕? 내가 읽은 시집이야기를 해줄게. 김상혁 시인은 여러 대학에서 문학과 시 창작 관련 강의를 하고, 라디오 방송, 칼럼니스트, 북토크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리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시대 영향력이 큰 시인이야. 다음 시집도 이미 계약을 마쳤다고 하더라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윤고은의 EBS 북카페] 화요일 게스트로 나오셔서 좋은 시들을 소개하고 직접 낭송도 해주시잖아. 시 낭송도 엄청나게 잘하셔서 두꺼운 팬층을 확보하고 계시잖아.
그거 아니?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색깔의 표지에, 안심되는 제목까지 달고 다정하게 말을 거는 책을 만났을 때의 행복감 말이야. 이런 책은 꼭 돈 주고 사서 내 곁에 두고 자꾸자꾸 펼치고 싶은 마음 말이야.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말을 거는 책이 나왔어. 너에게도 나의 평화의 마음을 담아 보냈으니까 금방 도착할 거야.
「작은집」에서
무언가 벗어나려는 존재가 세월이라는 것을 알았어. 대체 세월이라는 것이 내게 저절로 준 것이 뭐가 있다고 도적처럼 뺏어가려는 걸까? 사실, 작은집은 내가 어렵게 꾸민 것, 내어 줄 것도 없는 것, 세월이 착한 존재라면 생명이라도 바쳐서 내 아이와 아내의 행복을 위해 작은 집을 남겨 주기를 바라는 가장의 절절한 사랑이 느껴지더라고.
「유령이 없다면 슬프다」에서
마치 시인이 유령이라도 된다는 듯 “세상에 유령이 없다면 슬플 것이다. 내가 죽어서 유령이 될 수 없다면 정말 슬플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니까! 마지막 줄에는 ‘이제 슬픔이 없으니 돈도 시간도 쓸모없기는 매한가지’라고 적고 있으니 세상에나 우리가 사는 곳곳에 유령이 있다지 뭐야? 너도 밤길 조심하길!
「사람이 없다면 슬프다」에서
세상이 멸망하는 이야기를 적은 거야. 깊은 잠, 죽음, 멸망, 혼자 남는 것이라는 단어들을 읽는데 제목처럼 마구 슬퍼지더라니까. 사람 속에 나와 너, 가족, 아이 이런 말들을 대체하며 읽어보았더니 슬픈 마음이 더 깊어졌어.

「한겨울 진정한 친구는 어디에 있나」에서
네 생각이 났어. ‘우정에는 끝도 공포도 없다는 듯이’, ‘눈보라를 걸어도 좋다는 듯이’라는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네 생각이 났지 뭐야. 한겨울을 50번 가까이 친구로 지낸 우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니면 도대체 뭘로 설명할 수 있겠니?
「노크」에서
이 시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라고. ‘사람 정말 싫다’ 말하면 다정한 사람이 손잡아 주고 함께 산책하러 나가고 그런다는 것 말이야.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 아닐까? 사실은 그 사람도 ‘세상 사람이 싫어!’라고 고백하기도 하거든, 너도 꼭 읽어 봐.
사실 나는 말이야, 사람마다 각자가 하나의 집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 각자의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도 하고, 혼자 있기도 하면서 말이야. 제목이 「노크」잖아. 다른 사람의 집에 방문하려면 노크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끼리의 관계가 일방통행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 어떤 식으로든 노크한다는 거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고는 노크를 들은 사람의 선택이겠지? 어쩌면 노크가 노크인 줄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말이야. 이 시가 너무 좋아서 몇 번을 읽었어. 아마 너도 좋아하게 될 거야.
이 시집이 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환상세계와 현실 세계가 뒤엉켜서 그런 것 같아. 시인이 자유자재로 두 세계를 넘나들며 이야기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이해의 폭을 요구하지. 어쩌면, 환상을 가장한 미래의 꿈을 이야기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아.

「사랑이 충만했으나」에서
“끝없는 시간이 모두의 주머니 속에서 지구를 조금씩 조심스럽게 굴린다고 느꼈으며”라거나 “그는 듣고 싶은 말이 없으므로 마음을 다해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도 없다”라는 문장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시인은 마치 “시란 예측되는 언어를 쓰는 분야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난 이렇게 썼는데 너도 네 마음대로 읽어!”라고 낯선 생각과 낯선 문장을 써서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게 진짜 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할 수만 있다면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서 한 문장 한 문장 설명을 듣고 싶더라니까. 사랑이 충만하기 때문에 어떤 것도 궁금하지 않고 할 말도 따로 없으며 그냥 행복이 충만하다고 느끼면 될 것도 같고.
전체적인 느낌은 소설로 등단한 김상혁 시인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 이야기 속에 스스로 수많은 주인공이며, 스스로가 이야기 자체야. 그 이야기들은 이미 우리 독자들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알겠다는 거야. 한 마디로 이 시집을 규정하자면, '슬픈 것 같은' 이 정도로 쓰면 어떨까?
김상혁 시인의 앞의 시집 세 권에 비해서 이 책은 조금 더 슬픔 쪽으로 깊어진 느낌이야. 낯선 정서의 이야기들을 ‘소개받는 것 같다’(「네가 말해 주는」), ‘어떤 설명을 덧붙이고’(「그림이 된다」) 그가 쓴 시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더 똑똑한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그림이 된다」) 이렇게 생각해 봤어. 곧 도착할 낯설고 슬픈 정서를 기다려 주겠니? 그러면 이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