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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도서]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현대 시와 정통 시의 중간쯤에 선 시집 같았다. 붙잡고 싶은 말들이 떠다녔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다. 나는 어쩐지 정통 시집을 읽는다는 느낌과 정서에 푹 빠져서 읽었다. 참았던 눈물을 쏟게 하는 어떤 지점이 이 시집에는 있다.     

아내가 어쩌고 저쩌고 이런 문장들이 나와서, 자기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쓴다고 생각했다. 반복해서 나오니 이상해서 검색해 봤더니 그가 남자라서 놀랐다. 시를 읽으면서 성별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몇 차례 언급이 되었던 친숙한 그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심보선 시인이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다. 섬세한 표현과 세밀하면서도 슬픈 정서가 여성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내가 슬프고

슬픈 아내를 보고 있는 내가 슬프고 

그때 온 장모님 전화를 받으며, 그러엄 우린 잘 지내

지, 하는

아내 속의 아내는 더 슬프다. 

 

중략     

온 세상을 슬픔으로 물들게 하려고

우는 아내가 식탁 모서리를 오래오래 쓰다듬고 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마술이다.

                ― 「아내의 마술」 부분   

  

슬프고 신기한 마술을 부리는 아내를 지나서, 아프게 마음을 붙잡는 아래 시를 보자.    

  


 

햇빛 속에서든 그늘 속에서든

나는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

지금으로서는

내게 주어진 것들만이 전부이기에

지금으로서는 

                ―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 부분     

 

한 생이 웃을 일만 있어서 웃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웃어야 하기에 웃는 것이다. 울고 앉아 있다고 해서 없는 것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에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을 ‘그나마 다행’쯤으로 여기며 애써 웃어 보는 것이다. 속울음이 차고 넘치면 날 잡아서 남몰래 눈물 쏟아버리고, 사람들 앞에서는 속없이 웃어나 보는 것이다. 아래 시는 이 시집에서 뽑은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만든 시다.   

   


 

피할 수 없는 길    

 

이 길은 어제도 지나갔던 길이다

이 길 위에서 사람들은

오직 한 사람과만 마주칠 수 있다

수치심 때문에

그는 양쪽 귀를 잡아당겨 얼굴을 덮어놓는다

그러나 이 길 위에서

말해질 수 없는 일이란 없다

그는 하루 종일 엎드려 있다

수치심을 지우기 위해

손바닥과 얼굴을 바꿔놓는다

그러나 왜 말해질 수 없는 일은

말해야 하는 일과 무관한가. 왜

규칙은 사건화되지 않는가

이 길은 쉽게 기억된다

가로수들은 단 한 번 만에

나뭇잎을 떨구는 데 성공한다

수치심을 잊기 위해

그는 가끔 노래도 하고

박수도 친다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에게 인사를 건넬 수 없다   

  

이 길은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 아닐까? 오직 나와 마주치는 길이다. 나의 내면 깊이로 들어가 수치심을 지우고, 말해질 수 없는 이야기,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 말할 필요 없는 이야기들을 모두 묻고 또 씻어주는 길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자신이 마주하기 싫은 모습과도 만나야만 하는 길이다.     

 


 

구름이 내게 모호함을 가르치고 떠났다

가난과 허기가 정말 그런 뜻이었나?

나는 불만 세력으로부터 서둘러 빠져나온다

그러나 그대들은 나의 영원한 동지로 남으리

우리가 설령 다른 색깔의 눈물을 흘린다 한들

굳게 깍지 꼈던 두 손이 침착하게 풀린다

                             ― 「착각」 부분     

 

투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일까? 내 의식은 아직도 동료들과 함께라는 착각일까? 현장에서 운동 중인 시인인 송경동 시인의 「뻐꾸기 우는소리 하고 자빠졌네」처럼 노골적인 목소리도 아니고 삶과 현장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마음으로나마 동료라고 착각하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모든 풋내기가 그러하듯 나는 운명 앞에서 어색하기 그지없다” (「확률적인, 너무나 확률적인」) 시인은 상대하기 버거운 삶에 마주한 자기를 풋내기라고 규정한다. “아내가 종이 위에 적어준 장거리들처럼 인생의 세목들이 평화롭고 단순했으면 좋겠다” (「장 보러 가는 길」) 삶은 평화롭지 못하고, 자신에게 지나치게 객관적인 시선을 부여해서 긍정적이지도 못하다. “스스로를 견딜 수 없다는 것만큼 견딜 수 없는 일이 있겠는가” (「전락」) 누구나 자신의 어떤 부분인지 모르게 견디기 어려운 모습이 있다.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가.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나간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삶에서 십오 초 정도가 슬픔 없이 지나갈 정도라면 생은 온통 슬픔이라고 말하고 있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들이 모여서 우리네 삶에서 슬픔이 적어지기를 나도 십오 초 동안 기도해 본다. “생은 균형을 찾을 때까지 족히 수십 번은 흔들린다” (「대물림」) 이제, 흔들릴 만큼 흔들린 우리, 생의 균형을 찾을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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