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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최대한 근사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왔지만

(이미 실패했다면 어쩔 수 없고 ;ㅅ;)


이십 대의 마지막인 만큼

조금 철없는 소리도 적어보려 한다. 

(그래서 '아홉수'라는 새 카테고리도 생성했음)


나는 할머니가 밉다. 


할머니한테 딸이 셋이나 있는데,

할머니 병원 가는 날이면 

할머니 딸도 아닌 우리 엄마가 

서울에서 대구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할머니 병원을 모시고 약 챙기는 것도 싫고,


엄마한테 장 보게 하고, 집 청소하게 하고, 손님맞이하고

얼굴도 못 본 조상 제사로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27살에 결혼한 엄마가 갑상선 암에 걸렸을 때,

할머니가 애 낳기 전에 수술하면 안 된다고 해서

나 낳을 때까지 수술을 미루고,

나 놓고 나서는

아들 낳기 전에는 몸에 칼 대는 거 아니라며 또 미루다가

암이 더 커지는 지경까지 갔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하는 할머니 모습은 

선명하지 않지만, 엄마를 괴롭히고 

엄마를 힘들게 하고 

엄마의 신경을 온통 곤두세우는 존재로 남아있다.


하루는 우리 엄마랑 할머니랑 목욕탕에 갔는데,

사람들이 사이가 너무 좋아 보여서 모두 딸인 줄 안다.

딸이 아니라 며느리라고 답하면, 

어쩜 그렇게 사이가 좋냐며 다들 부러워한다.


나는 그런 말도 싫다. 


우리 아빠가 외할아버지랑 둘이 목욕탕 가는 건 상상이 안 되면서

물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내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셔서 

아빠는 그럴 기회도 없었지만, 있었어도 안 했을 게 분명하다.


아무튼 목욕탕에 갔는데,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던 쇠약한 할머니가 욕탕에서 실수로 대변을 누셨다.


엄마는 당황한 기색 없이 아주 씩씩하게 깨끗하게 치웠다.

황소만큼 드세고 오페라 배우처럼 목창이 좋은 할머니는 

며칠 동안 김빠진 풍선마냥 의기소침해져 말을 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달래고 또 달랬다.

나는 엄마가 욕봤다고 생각했고,

왜 아빠의 엄마를 엄마가 씻겨야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엄마가 처음 시집오고

할머니는 굉장히 엄하고 무섭게 엄마를 다그쳤다. 

엄마는 늘 할머니 눈치를 보며 시험지가 없는 시험을 쉴 수 없이 치러야 했다.


어릴 때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나랑 동생이 대구에 도착하면,


멀리서부터 '아이고~~~ 왔나~~~" 

소리치며 맨발로 뛰어나와 맞이했다.


그리고 동생이 들어가면 대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아직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들어가서는 전날 열 시간 넘게 푹푹 끓은 곰국을 차려주고,

동네에서 제일 비싼 조기를 꺼내주신다.


배가 불러 남산만 해질 때까지 끊임없이 먹을 걸 꺼내 준다.

나는 곰국 국물만 있고, 고기는 온통 동생 그릇에 들어가 있다.

어릴 때 늘 국물만 먹어서 원래 곰국엔 고기가 없는 줄 알았다. 


맛있는 생선도, 과일 접시도 모두 동생 먹기 편하게 가까이 둔다.

동생은 나보다 팔도 긴데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존재고

장남, 장손만 입에 달 정도로 아들만 좋아한다. 


어디 그뿐인가.

나보고 여자는 공부 많이 할 필요 없다며

얼른 시집이나 가라고 한다. 

내가 어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안 듣고 싶어도 안 들을 수 없는 큰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답답한 말들만 쏟아내는데

도통 대화가 안 되니 나는 입과 귀를 모조리 닫았다.


더이상 할머니의 말 한 마디 한마디에 상처받지 않고

무뎌질 수 있는 날,

할머니 엄지 발에 티눈이 심하게 나서 엄마랑 병원에 모시고 갔다.


깊숙이 자리 잡은 티눈을 제거하기 위해 

의사 선생님은 무서운 소리를 내는 기계를 들고 

할머니의 발을 요리조리 살폈고

작은 체구를 번데기처럼 접은 할머니는 

"아이고~ 나 죽네~~~" 앓는 소리를 하며 눈을 질끈 감으셨다.


호통치고 굳센 할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모르는 세상에 홀로 버려진 아기처럼 잔뜩 겁에 질린 채 두 손... 아니 온몸을 떨고 계셨다. 


목욕탕에서 방금 나온 듯 손톱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쪼그라든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아 드렸다.


아마 그때 처음 마주했을 것이다. 

엄마를 괴롭히는 할머니가 아니라

쇠약한 보통의 할머니. 


사실 할머니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날 보면 

검은색 앞주머니에서 꾸깃꾸깃 지폐를 꺼내서 만원, 오만 원 용돈을 주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구르트를 냉장고에 숨겨두고, 

통화할 때마다 소리가 제대로 안 들려도 내 말에 꼭 대답한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나 졸업할 때마다 내 이름이 적힌 통장에 0이 찍히고,

항상 엄마랑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한다. 


할머니는 내가 할머니의 어떤 모습을 닮았는지,

어떤 모습을 닮지 않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할머니는 나보나 나를 더 잘 알고 있고,

나보다 나를 더 믿는다. 


2020년, 

1월 마지막 주, 설 연휴에 

아빠랑 엄마랑 할머니랑 짧게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할머니의 첫 해외여행이다.


사실 부모님이랑만 가고 싶지 

할머니랑 가는 게 조금 어색할뿐더러

여행 가서 엄마가 편히 못 쉬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지만,

엄마가 너무 가고 싶어 하고 엄마의 부탁이자 소원이라고 해서 

못 이기는 척 꿍한 표정으로 알았다고 답했다. 


엄마는 아빠랑 한방을 쓰고,

나랑 할머니가 여행 룸메이트가 되는 셈이다. 


휴가 취소해버릴까...


벌써 근심 가득한데,

한편으론 또 어떤 추억이 만들어질지 기대된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지금까지 내가 알던 할머니의 모습과 또 다른 

할머니의 어떤 새로운 모습을 마주하게 될까?



이미지출처: 네이버 그라폴리오

https://grafolio.naver.com/works/1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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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나날이

    구구절절 마음에 감기는 우리 시대의 사람을 만나고 있네요. 할머니가 그런 모습이네요. 아들 사랑, 손자 사랑.......딸들은 거리를 두는. 외형으로는 늘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여인들의 모습을 할머니에게서 보내요. 저도 그렇게 느끼며 성장했어요. 그것이 성장할 때는 할머니의 전부인 줄 알았어요. 하지난 성장하고 나서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할머니도 여인이죠. 왜 딸의 아픔을, 설움을 모르겠어요. 자신의 삶인 걸요. 속으로 감추는 것이죠. 여행 즐겁게 다녀오세요. 아마 좋은 추억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되어요.
    글이 늘 진국이네요. 지금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은 책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히 경쟁력 있는 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되네요. 글쓰기에도 마음에 두는 삶을 사시길.

    2020.01.06 06:4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박공주

    아고 꿀벌님. 글 읽는데 마음이 복잡해지네요. 우선, 가족 여행 즐겁게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부모님도 할머니도 꿀벌님이랑 함께라서 든든하고 자랑스러우실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제가 일 나간 사이에는 저희 아이를 시어머니가 봐주시고 계셔서 우리 아이 눈에 나중에 할머니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감사해요.
    좋은 시간 보내시고 계시길 바랍니다~~!

    2020.01.06 07:3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march

    손자 손녀에게는 한없이 자상했지만 엄마에게는 참 엄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요.하지만 엄마는 할머니에 대해서 싫은 기색 한번 내지 않았어요.작은 엄마가 할머니랑 부딪히고 싸울 때도...여행을 가면 새로운 면을 보게 되실 수도 있지않을까요? ^^

    2020.01.06 07:44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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