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성찰 2020년 1월호
한창 일기를 열심히 쓸 때는 일기 종류가 3개였다. 날짜별로 오늘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육하원칙에 충실한 일기, 날짜와 무관하게 사건별로 감성 위주로 쓰는 감성일기, 미래의 관점에서 쓴 미래 일기.
성찰하는 습관을 갖기 위해 성찰 방법도 다양하게 바꿔봤지만, 어느새 일기를 쓰려는 목적보다는 의무감만 남게 되었다. 일기와 달리 블로그는 관중이 있다. 보는 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쓸만한 글이 되기 위해 경험하고 만나고 배운 것들을 매달 기록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나에게 일어난 3가지 사건
1. 1. 네이버웹툰 동계인턴
일을 하는 것보다 일을 시키는 게 더 어렵다는 걸 몸소 깨닫고 있다. 1월 6일부터 4명의 인턴이 8주 동안 함께한 후 최종 입사가 결정된다. 입사가 보장된 게 아니다 보니 줄 수 있는 시스템 접근 권한도 제한적이고 형평성과 공평성 때문에 우리 업무를 똑 떼서 한 사람에게만 줄 수 없다. 우리 일을 덜어주는 느낌보다 그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을 따로 만들어서 주고 있어서 솔직히 말하면, 업무는 두 배가 되었다. 그래도 좋은 멘토가 되기 위해 고민하고 가르쳐 주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 똑똑하고 유능한 젊은 친구들을 보니 긴장감을 가지고 이번 주말도 도서관 행.
2. 2. 동생은 출국, 아빠는 귀국
동생이 폴란드로 출국한다. 내심 나 혼자 유학한 게 미안했는데, 그 고생을 왜 하냐며 유럽 여행도 관심 없는 동생이 한국을 떠나 해외주재원 생활을 시작하니 아이러니하다. 과분할 정도로 인생이 잘 풀리는 동생 팔자가 신기하면서도 부럽다. 물론 동생은 해외에 대한 로망은 전혀 없고 오로지 강남에서 놀 궁리만 해서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겠지만 계획에도 없던 이직 제안에 폴란드로 발령받으며 인생이 파란만장해졌다.
반대로 해외 생활을 오래 한 아빠가 귀국한다. 오랜 시간 두바이에서 지내다가 최근 알제리로 근무지를 옮겼다. 오랜만에 아빠랑 설날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엄마가 들떠있다. 딸의 잦은 해외 출장과 아빠 짐 부쳐주느라 공항을 들락날락한 엄마 말로는 아들 보낼 때는 속이 후련하고 딸 보낼 때는 마음이 짠하다고 한다. 동생 방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은 엄마와 달리 나는 동생 가자마자 물건 다 빼고 어떻게 내 입맛대로 바꿀지 행복한 고민만 하며 애써 슬픈 마음을 외면해본다. 이젠 동생마저 떠났으니 집에 온 가족이 다 모이는 날이 더 드물겠다.
*1월 4일 동생 출국
*1월 15일 아빠 귀국
3. 할머니와 해외여행
가족관계도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쑥 커버린 나와 달리 쪼그라든 할머니의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살가운 마음과 달리 서툴고 거친 표현만 나오고 이제 좀 익숙해질때쯤 헤어짐이 다가왔다. 할머니를 알아가기 위해 여행하면서 할머니를 관찰한 관찰일기를 적었다. 다가가지 못한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하다가 문득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3가지 만남
대기업 인적성 문제 중에, 10년 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과 만나는 모임이 몇 개가 있냐는 객관식 질문이 있었다. 2개 이상, 4개 이상, 6개 이상 이런 식이었는데 인간관계로 인성을 파악하는 게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나는 쇼핑도 싫어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모처럼 설 연휴에 피로가 쌓여서 처음으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혼자 집에서 쉬다 보니 쇼핑도 하고 평소 못 보던 친구도 만났다.
1. 고등학교 친구
지금까지 총 3번의 가까운 지인 장례식에 다녀왔다. 공통점으로는 모두 부친의 장례식이었는데,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 부친상, 퇴사했던 당시 이전 직장 인턴의 부친상, 고등학교 동아리 부원 부친상이었다. 작년 말에 다녀온 동아리 친구 부친상은 느끼는 바가 많았다. 훌쩍 커버린 친구가 울음을 꾹 참으며 상을 지키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어릴 적 모습으로 보여 그 자리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장례식 다녀온 뒤로도 미안한 마음이 남아 설 연휴 동안 집으로 초대해 4시간 동안 깊은 얘기를 나눴다. 바쁘단 이유로 더 자주 보지 못하고 안부를 묻지 못한 마음을 뒤늦게나마 전하고 싶었다.
2, 고등학교 후배
고등학생 때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모범생 동생이 있다. 학생일때나 직장인이 돼서도 사람 많은 카페 대신 조용한 거리를 산책하며 사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쉽사리 꺼내지 못한 근심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매사 반듯하고 성실한 동생과 함께하는 시간은 내게 치유의 시간이다.
3. 초등학교 친구
작은 선물과 함께 예쁘게 테이블을 세팅하고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했다. 약속이나 한 듯 새해 카드를 주고받고 모두 화장기 없는 모습에 운동복 차림으로 온 모습을 보고 이런 게 진짜 편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잘난 점을 내세울 필요도 없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는 친구가 몇이나 있을까? 직업도 직종도 모두 다르지만, 여전히 친구인 게 초등학교 친구의 매력이다. 그땐 이런 걸 따지지도 알 수도 없었으니까. 전문직, 기술직인 친구들이 사는 세상 이야기는 나와 다르기에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3가지 배움
1. 1. 건강
1월1일부터 아팠다. 새해를 고열과 기침 콧물로 시작했고 나의 새해 첫 지출은 약값과 병원 진료비였다. 처음으로 신체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많이 나왔다. 건강에 비상이 걸렸다. 잃고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건강이더라.
2. 요리
요리 프로그램이 많아져서 일까 집에 손님을 초대해서 근사한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고 나도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는 음식 한두개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20년 새해 목표에 '매달 레시피 한 개 제대로 터득하기'가 있었다.
1월엔 밀푀유 나베를 도전했는데 첫 꿀벌식당의 손님은 엄마, 아빠, 할머니였다. 화려한 비주얼과 건강한 식자재로 맛과 멋을 모두 잡았고 설 연휴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날에 맞춰서 준비했더니 엄마는 설 연휴 동안 고생한 피로가 싹 달아난다며 기뻐했다. 늘 먹는 한끼 식사지만 정성을 담은 요리는 최고의 선물이자 특별한 이벤트가 되기도 한다.
3. 문화생활 | 아이다
엄마와 같이 보려고 1층 VIP석에 가까운 R석으로 구매했다. 내 돈 주고 구매한 가장 비싼 좌석이다. 정말 좋아했던 캣츠도 4층에서 봤었는데 1층으로 구매하면서 내가 원하는 수준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으쓱해진다.
나를 변화시킬 1가지 멈춤
콜라
나이 들어도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뭘 먹어서 그런 거냐며 좋은 거면 같이 먹자는 질문을 하면 건강해지려면 몸에 좋은 걸 먹을 게 아니라 몸에 나쁜 걸 안 먹어야 한다고 답한다. 콜라엔 설탕이 많이 들어가 있다. 나는 콜라 중독자는 아니지만, 피자와 치킨이 있을 땐 꼭 같이 먹는다. ‘나는 평소에 안 먹으니까 이럴 땐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끊지 못했는데 이참에 콜라를 끊었다. 제대로 끊기 위해 콜라 제조 영상도 찾아봤다. 콜라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설탕 덩어리를 생각하며 이젠 안녕.
*강정욱님의 월간성찰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