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성찰 2020년 3월호
혹시나 내 월간성찰을 기다리신 분이 계신다면 해명하고 싶다. 3월이 끝날 무렵 나와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월호 월간 성찰을 정성스레 작성했고 뜻깊은 사건들이 많았던 만큼 그 순간을 추억할 사진을 나중에 첨부해야지 하고 미뤘다가 완성된 글이 날아갔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그렇게 되고 나니 의욕이 훅 떨어지면서 다시 쓰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 썼던 만큼 처음에 쓴 단어 그대로, 다르게 쓰고 싶지 않은 생각에 원고를 두 번이나 날려버린 낙담은 제법 오래 지속되었다. 그 순간 피한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지낸 것도 아니었다. 마음 한켠엔 무거운 빚이 얹혔고 이렇게 벌써 5월이 되었다. 3월호를 건너뛰고 4월호를 쓸 수 없으니 이젠 그 마음의 빚을 내려놓을 때가 왔다.
나에게 일어난 3가지 사건
코로나 19 현주소
1) 29번째 생일
3월엔 내 생일이 있는 달이다. 비록 상황이 이런 만큼 떠들썩한 생일파티를 하진 못했지만, 집에서 엄마와 직접 케이크를 만들면서 조촐하지만, 남부럽지 않은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작년 생일엔 출장 때문에 미국에서 보낸 터라 엄마는 생일 당일 아침에 나와 얼굴 보며 밥을 먹고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행복해했다. 별 탈 없이 서로의 안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한지 이젠 안다.
2) 아빠와 동생
코로나 19로 인해 해외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아빠는 알제리에서 돌아오셨다. 뉴스에서 아프리카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걸 보도할 때마다 엄마는 아빠가 이 시기에 한국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안심된다며 하루하루 감사히 여기고 있다.
동생은 주재원으로 폴란드에 머물고 있다. 4월 말 황금연휴에 인생 첫 유럽 (가족) 여행 겸 동생을 보러 동유럽 여행 계획을 준비했었다.
폴란드 > 체코 > 오스트리아 > 스위스 > 독일
작년에 추석도 반납하며 출장 다닌 터라 이번 가족 해외여행은 제법 길게, 작년에 승인도 다 받아놨다. 다행히(?) 결항하는 바람에 취소할까 말까 고민할 것도, 취소 수수료도 없었다. 우리가 못 가게 되자 동생이 햇반 200개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폴란드는 아예 택배 금지란다. 어떻게 전해줄지 모르겠다. 뭐, 굶진 않겠지.
3) 유학생
한국은 잠잠해지나 싶은데, 영국, 미국, 각 나라 유학생이 유입되면서 다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소수의 이기심 때문에 유학생에 대한 시선이 날로 날카로워 지고 있다. 부정적인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마음이 따갑다. 지금이 아니라 5년 전에 유학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많은 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여전히 미국을 포함한 영국, 싱가포르에 남아서 유학하거나 직장 다니는 친구들에게 숨죽여 안부를 묻는다.
3가지 배움
1) 베이킹 | 모닝빵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일까, 베이킹을 참 많이도 했다. 레드벨벳 크림치즈 케이크도 만들고, 딸기 생크림 케이크도 만들고 남은 크림치즈로 모닝빵에 발라먹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모닝빵은 6개에 2,500원인데, 크림치즈를 넣은 모닝빵은 하나에 1,000원이다. 모닝빵 6개를 사서 내가 만든 크림치즈와 딸기, 사과, 토마토 등 취향에 맞게 골라 먹었다. 돈 번 것 같아서 신난다. 맛도 최고다.
2) 블로그
주변 사람들에게 블로그 하는 걸 강력히 추천하고 있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조금씩 영향을 미쳐서인지 다행히 일 년에 한 명씩 가까운 지인이 블로그를 개설하고 있다. 브런치, 네이버, 예스24 다양한데, 이번 달에도 영업에 또 성공했다. 주변에서 "XX랑 XX 두 플랫폼의 가장 큰 차이는 뭐야?"라고 물으면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냐에 따라 맞는 플랫폼을 추천해줄 정도로 열을 내고 있는데 이번에 블로그를 개설한 가까운 지인은 티스토리에 둥지를 텄다. 내가 한 건 없지만 뿌듯하다. 더 많은 내 주변 사람들이 글을 남기며 하루를 기록하면 좋겠다. 글은 그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니까.
3) 생일축하
시대가 참 좋아졌다. 온라인 결혼식, 온라인 졸업식이 생기듯이 이젠 직접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축하를 건넬 수 있다. 기프티콘을 통해 지인들과 블로그 이웃님에게 축하를 받았다. 일 년에 단 한 번 있는 생일 덕분에 평소에 연락이 끊긴 지인하고 다시 닿을 기회가 되는 게 참 좋다. 갑자기 연락하면 당황하지 않을까, 어색하지 않을까란 걱정도 잠시 두고 가벼운 인사말로 녹슨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회복해본다.
생일 때 꼭 전화를 걸어준다는 이루님의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사소한 거지만 놓치고 있었던 "진심 어린 축하"를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 혹시 지금 바쁘면 어떡하지, 내가 방해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전화할 엄두는 못 내고 대신 정성스러운 카톡만 남겼었는데, 전화해준 그 마음이 참 고마운 것 같다. 그래 일 년에 딱 한 번인데, 내가 방해하면 어때! 앞으론 생일이 있다면, 꼭 전화하리라 마음먹었다. 좋은 가르침을 준 이루 님께 감사하다. 이루 님께 제일 먼저 실천해드리고 싶다.
마치 님이 주신 대저 토마토
한 상자를 주셨는데 금세 사라져버렸다 :)
이루 님이 주신 생일선물 3탄 봄을 담은 화사한 노란 꽃 한 다발과
마치 님이 예~전에 주신 티코스터
투샷!
3가지 만남
1) 의사가 된 두 친구
2월 말부터 지금까지 전 직원 모두 재택근무체제로 들어갔다. 첫 한 주는 정말 편했다. 화장할 필요도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지옥 같은 출퇴근 시간을 피할 수 있어서 마냥 행복했고 금 같은 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리라 다짐했다.
IT업계라 다행히 업무 하는데 큰 이슈는 없었고 오히려 미국팀이랑 언제든지 간편하게 화상회의를 할 수 있어서 이점인 부분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화상회의실 잡는 게 쉽지 않다)
재택근무하면서 외출을 자제하고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재택근무하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서서히 재충전이 될 때쯤 마침 생일이라 중학교 때 친구에게 연락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보지는 못했지만, 늘 사는 소식이 궁금하고 보고 싶은 친구였다. 용기를 갖고 연락을 해서 한 명씩 한 번 만났다. 공교롭게도 두 친구 모두 의사가 되어 있었다. 한 명은 세브란스 병원에, 한 명은 고대병원에. 오랜만에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자극도 되고 다른 직업인 게 신기하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게 자랑스러웠다. 올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꺼낼 수 있는 좋은 추억이 생겨서 마음이 넉넉하다. 나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돼야지.
교훈: 전문직이 최고로구나
2) 필라테스
동생이 생일선물로 필라테스 1:1 수업 30회 선물해줬다. 사실 내가 해달라고 질기게 졸랐다. 물론 내가 내도 되지만, 나도 낼 수 있지만, 동생이 내주면 훨씬 더 열심히 할 수 있으니까 동기부여에 좋다는 둥 엄청나게 설득했다. 동네 근처와 회사 근처 필라테스 일곱 군데 수강료를 비교해서 내가 다니는 곳이 제일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어필도 하면서 나름 성의도 보였다. 동생은 제법(?) 쿨하게 30회를 끊어줬는데 (나는 20회로 연장하려 했는데 동생 찬스로 30회 ㅋㅋㅋ) 알고 보니 나중에 엄마한테 따로 전화해서 내가 운동 열심히 하고 있는지, 이번엔 제대로 다이어트할 의향이 있는지 이것저것 조사하듯 물어봤더라. 실제로 수업하다가 '아 진짜 더는 못하겠다'라고 포기하려는 순간 동생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래도 동생이 해준 건데, 한 동작만 더 하자!'고 참기름 짜내듯 힘을 내서 이룬 적이 있다.
20회로 끊었던 필라테스를 꼭 연장하리라 다짐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새로운 필라테스 강사님 때문이다. 남자 강사님이리 원장님이 조심스럽게 얘기하셨으나 그 어떤 편견도 없었고 오히려 수업이 상상되지 않아서 신기했다. 새로운 강사님을 만나자마자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강사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따르고 있다.
일단 남자 필라테스 선생님이 좋은 이유는 힘이 좋다. 나는 원체 뻣뻣해서 다른 여자 강사님들이 밀고 당겨도 시원한 느낌이 덜한데 남자 강사님이 약간의 힘을 더해서 눌러주시니 시원함이 10배 20배 높아진다. 강사님의 수업을 하나도 안 빼먹고 기억하고 싶어서 수업 마치고 한 번도 안 빼먹고 매일 수업일지를 작성했다. 수업 일지엔 수업 전체 동작을 그림으로 그렸고 강사님의 코멘트도 잊지 않고 적었다. 처음엔 50분 수업을 모조리 기억하는 게 쉽지 않았고, 동작 이름이나 기구 이름도 낯설어서 내 맘대로 암호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젠 제법 루틴이 생겨서 처음만큼 어렵진 않다. 동생 보고 있니? 누나 진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라.
원장 선생님께서 동생이 생일선물로 필라테스 끊어준 게 기특하셨는지 토삭스를 선물해주셨다.
3) 아빠와 함께 보낸 생일
작년 생일엔 나는 미국에 출장으로 가 있었다. 생일인데 출장 가서 어떡해-라는 주변 걱정과 달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았다. 기분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으니까. 이번엔 재택근무 중이라 집에서 생일을 맞이했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했다. 양력 내 생일과 아빠 음력 생일이 겹치기도 해서 아빠 생일에 맞춰서 아빠가 일하고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서 같이 케이크를 불었다. 3월만 케이크를 3번 불었다. 아빠 생일, 내 생일, 외숙모 생일. 아빠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낯설지만, 아빠를 알아가는 시간이 좋았다. 아빠를 알아가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나를 변화시킬 1가지 멈춤
새우잠
성인이 된 후에도 가장 편한 잠자리는 엄마 배 속에 있었던 자세와 비슷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보통 등을 말고 두 손을 맞닿는 새우잠을 많이 잔다. 엄마는 제발 침대 좀 넓게 쓰라며 왜 쭈그리며 자냐고 핀잔을 주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침대 중앙보다는 구석으로 가서 몸은 한껏 웅크린다. 그리고 다음 날 당연히 목과 어깨가 뻐근하다. 특히 한쪽 어깨 위로 몸 전체 무게가 실리니 고통은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젠 새우잠을 멈추기로 했다. 최대한 침대 중앙에 천장을 보고 손등을 바닥에, 손바닥을 위로 두고 몸에 무리가 덜 가는 바른 자세로 자기로 다짐했다. 물론 3월 내내 지킬 수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늘 인식하고 새우잠 자세로 잠들고 싶을 때도, '새우잠 자세로 10분만 있다가 다시 바른 자세로 돌아가자'라고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있다. 바른 자세는 잠들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질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확실히 자고 일어난 후 그 개운함과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좋은 습관이 생겨서 좋다. 4월이 돼서도 잘 유지해야지.
+참,
아직까지 콜라 안 마시는 거 잘 지키고 있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걸은 날은 매일 표시하면서 챙기고 있어요 ^^
*강정욱님의 월간성찰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