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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으로 푹 빠질 것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생겼다.

이름도 괴상한 <알쓸신잡>이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사전을 멋대로 합친 말이다.

나영석 PD의 특유 감각으로 여행과 수다를 잘 버무린 프로그램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대본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수다를 나누는데,

보고 듣기만 해도 내가 똑똑해지는 느낌이 든다. 


2. 

만약 내가 10년 후, 그런 프로그램에 나간다면 

난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을까?

해외는 generalist가 아닌 specialist를 선호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선 적당히 모든 걸 잘하라는 강요를 받는다.


3. 

지금이라도 내 분야의 전문성을 쌓기 위해 블로그 카테고리를 늘렸다.

잘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잘해야 하는 걸 골고루 넣었다.

<김제동의 톡투유> 때 처음 알게 되었고, 

<알쓸신잡>의 품격을 한층 더 높여주는 정재승 교수님처럼 

27살에 KAIST 교수가 되진 못하겠지만, 

아직 1.5년이 남았으니 지금부터 쌓다 보면 

똑똑한 사람은 못 돼도 남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4.

출근길,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봤다. 

취업 앞에 자유는 없다 '토익 감옥' 찾는 청춘들이란 글이다.

제목은 충격적이고 내용은 가히 놀랍다. 

-

서른 살 취준생 이모씨가 다니는 기숙형 학원은 

휴대폰 반납, 연애 금지, 통성명 금지,

학원에 나오지 않는 휴일 동안에도 술 금지다.

서로의 이름을 몰라 학용품을 빌릴 땐 

"1번님 수정 테이프 좀 빌려주세요"라고 출석번호를 부른다.


더욱 슬픈 건, 

그렇게 시간과 돈을 퍼부어 딴 점수가 실무에서 쓸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5

"필기 놓치지 마세요. 영어 약한 사람은 필기기 필수입니다." 

글로 접한 기사지만 이미지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초등학생 때 깜깜할 때까지 종합 학원 특목고 반에 잡혀서 치열하게 경쟁했고, 

수능을 보고 재수하라며 여자 기숙사 학원에 날 넘기려는 아빠의 명령에 불복종한 뒤,

불효자식, 패배자라는 낙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그때 그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토익 감옥에서 허덕이고 있었겠지.


6.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들어가는 대학에서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성문 기초영문법을 10%로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미국, 캐나다, 영국뿐 아니라 

중동에 있는 수많은 원어민의 이력서를 평가하고,

면접을 보고, 트레이닝시키며 영어 교육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맡고 있다.


6. 

영어는 필기하는 손의 움직임이 아니라

입의 움직임이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없는 영어 학원은 죽은 학원이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없는 영어 공부는 죽은 공부다.


영어를 배우러 갔는데, 영어로 계속 말하는 건 선생님이고,

학생들은 조용히 입을 꼭 다문 채 빠르게 필기만 하고 있다면, 

그건 선생님 영어 공부시켜주는 꼴이다.


7. 

조만간 시험을 앞둔 토익스피킹 7급을 목표로 하는 학생을

1:1로 과외공부를 하고 있다.

오랜 시간 같은 책으로 반복적으로 공부하느라

 책 밑부분이 검게 변한 게 보였다. 

학생의 수준과 목표를 확인한 뒤,

첫 과외 수업을 시작하는 동시에 학생은 책을 펴고, 

책에 적힌 영어 문장을 읽으려고 한다.

당장 책을 뺏었다. 


8. 

"How often/ how many times~"

책 첫 장에 나온 문장패턴이다. 


How often do you go to the theater?

바로 밑에 있는 예문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을 것이다.


책을 뺏은 뒤, "얼마나 자주 영화관에 가?"를 입으로 영작해보게끔 했다.

순간 정적이 흐른다. 

어디서부터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몰라 엉뚱한 대답만 했다. 

학생 본인도 놀랐다. 


9. 

문장을 읽는 것과 문장을 만드는 건 다른 영역이다.

커피 마시러 갈래? 도 1초 만에 나오지 않는다면,

기본문장구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막연히 영어책을 많이 읽고 영어 지문을 많이 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영어책을 잠실 실내수영장만큼 읽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인 길이 있다.

각각 다른 영어 문장 10개를 읽기보다, 한 문장이라도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한 뒤,

변형하고 응용하는 것이다.


10.

첫 수업은 내가 준비한 만큼 진도를 빼지 못했다.

고작 한쪽을 나갔으니 말이다. 

한쪽에 예문이 단 하나만 있다는 걸 고려하면,

배운 게 적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How often do you go to the theater?

기본 질문도 1초 안에 대답하지 못했던 걸,


How often do you buy/go/take/meet/eat/travel/sleep 등 

여러 상황에서 필요한 문장을 다양한 동사화 함께 구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How often do you go the drive-in theater with your friends to watch a new movie?

같은 의미를 담고 있어도 보다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하며 

문장 길이를 자연스럽게 늘일 수 있게 되었다.


11.

영어를 잘하는 기준은 토익 900점이 아니다. 

같은 표현도 구체적으로 하고, 같은 어휘를 반복하지 않는 게 진짜 영어 고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이 아닌 입이 움직여야하며,

혀가 기억할 수 있도록 

수업은 시끄러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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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march

    우리 아들 영어 부탁드리고 싶어집니다.^^

    2017.06.21 01:1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꿀벌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ㅎㅎ 아드님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0^

      2017.06.22 19:30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토익스피킹 과외지도까지! 엄청 바쁘신 능력자시네요. ^^

    2017.06.22 10:3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꿀벌

      아그네스 님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 보면 아그네스 님이야말로 능력자이신것 같아요 :) 저는 운이 좋게도 회사에서도 영어를 계속 써야되는 환경이에요. 회사뿐 아니라 밖에서도 계속 쓰고 싶어서 찾게 되더라고요 ㅎㅎ

      2017.06.22 19:32
  • ado04

    글을 읽다 문든 득 생각은,
    제가 감히 판단을 할 순 없겠지만 꿀벌님은 무척 바른 생각을 가지신 분 같아요.
    1번부터 11번까지 적으신 글들 하나하나가 공감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
    꿀벌님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2017.06.23 12:41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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