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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도서]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저/송무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스트릭랜드는 잘 다니던 증권사를 갑자기 그만둔 채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어느 날 홀연히 파리로 떠난다. 화자인 '나'는 스트릭랜드 부인의 부탁을 받고 그에게 찾아가 돌아올 것을 종용한다. 스트릭랜드는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p.69)


'내'가 그를 설득하는 논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당신은 가족들에게 큰 죄를 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비난하고 멸시할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당신에게 없다면 기껏해야 삼류에 그칠 것이다. 보편적으로 공동체에 속한 개인이 지켜야할 법칙이 있다.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서 생각하도록 우리를 강요한다. 스트릭랜드는 이 모든 논리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답을 한다. 그것은 '난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상관없단 말이오.'이다. 다시 화자가 주장했던 논리를 읽어보면, 그것들은 모두 '남들이 그래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이 논리는 다름아닌 우리가 '꿈'을 찾으려 할 때 스스로를 설득하며 주저 앉히는 말들이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명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배제하고서는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다. 우리가 내리는 대부분의 행동에 '나'는 없다.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그 '미친짓'을 해냈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살아버리는 그런 정신나간 짓 말이다. 그는 상징적 의미의 미친짓 말고도, 실제 행동으로도 패륜적인 족적들을 남기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점에서 신화의 완성을 발견한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와 관련된 오해를 풀기 위해 지극히 정상(?)적으로 쓴 아버지의 전기는 오히려 그를 찬양하는 이들을 당황케 만들었다. 그가 그린 모든 그림의 색채는 빛과 붓, 물과 물감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 행태와 오만한 광기까지가 섞여서야 비로소 빛을 내기 때문이었다. 그의 그림은 특정한 시기에 그려진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의 온 인생을 쏟아 부은 진실의 집적체로서 의미를 갖고 있었다.  


달과 6펜스는 너무도 유명해서 이제는 거의 이상과 현실의 대명사 정도가 되어버렸다. 직장 독서토론 모임에서 이 책을 첫 번째 책을 선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사실 모임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꿈을 찾아갈 리 없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매번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 하며 살도록 되어 있으며, 그 길로 간 누군가도 우리가 가는 이 길을 그리워 하며 살 것 또한 알고 있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두 길을 모두 갈 수 없음을 아쉬워 하며, 가지 못한 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스트릭랜드는 사람이 적게 간 그 길을 택한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고, 그 길에서 완성된 결실을 맺은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그가 신화가 되기까지 정상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신화의 완성에서 내면 깊숙이 잠재되었던 터무니 없는 꿈의 실현을 대리만족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종종 독자를 위한 해설이 실리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 책이 특히 그렇다. 이 소설이 '폴 고갱'을 소재로 쓴 책인 것은 다 알고 있다. 굳이 해설에 사실은 고갱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스트릭랜드와의 차이를 밝혀 놓은 점에서 책 전체의 흥미가 급격히 반감되어 버렸다. 우습게 떠오른 생각은, 스트릭랜드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한답시고 아버지의 신화를 무너뜨리더니, 이 책의 역자는 독자를 위한답시고 달과6펜스의 신화를 갉아 먹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달과 6펜스는 대학 때 읽고 최근 다시 읽어보았는데 읽히는 느낌이 판이했다. 그것이 내가 사회에 순응해 버린 결과인지, 꿈을 잃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스트릭랜드에 대한 경외감이 커진 것은 확실하다. 모든 책이 두 번 읽혀야 한다면 그 첫번째와 두번째를 언제로 하느냐에 따라 책의 가치가 극대화 될 수 있을텐데, 이 책은 사회에 발을 딛기 전에 한 번 읽고 사회 생활이 십년이 넘은 후에 한 번 읽는다면 적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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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march

    사회생활 전과 후. 달과 6펜스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시기인것 같아요. 역시~~오늘 도전 골든벨에서 꿈을 적어보라고 했는데,눈에 띄는 답이'건물주'더라구요. 헛웃음이 났어요. 어쩌다가 이지경까지 왔을까? 그런 꿈을 가진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까요? 요즘 아이들이 달과 6펜스를 읽는다면 '미친놈'이네 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해요.

    2017.04.02 21:29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적반하장

      오랜만에 읽어보면 책들이 다 그때랑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긴 한데, 이 책은 특히나 그런 것 같아요. 영화 박하사탕을 볼 때랑 조금 비슷하기도 하고. 지금은 우리 때보다 더 '꿈'을 위해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어요. 그걸 말하고 있는 사람은 어김없이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겠죠.

      2017.04.02 23:38
  • 문학소녀

    달과 6펜스는 고등학교 때 읽고 독후감까지 썼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읽으면 적반하장님처럼 완전 다르게 다가오겠지요? 앞에 march님, 아이들 꿈이 건물주라니... 정말 씁쓸하네요. 하긴 어느 초등학교 반에서는 공무원이 가장 많이 나왔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이것도 슬퍼요. 분명 한 가지 이상은 자신있게 잘하는 재주가 있을텐데, 그것은 찾지도 못하고...우리 아이들의 꿈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 에고... 조용필이 대단한 가수라고 느껴지네요... 이미 오래전에 노래했잖아요...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ㅠㅠ

    2017.04.03 04:25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적반하장

      학교 다닐때 읽히기 딱 좋은 소설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뭔가 고등학교 때 읽고 다 뗐었어야 할 것 같은. 전에 김어준이 삼성전자에 들어가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고 한 말 듣고 맞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어떻게든 직장만 잡아야 하다보니 다들 초조해지고. 그래도 꿈이 공무원이믄 안되는데. 조용필 노래중에 바람의 노래 가사가 저는 생각나요. "보다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수 없다는걸 우린 깨달아야되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것들을 사랑하겠네"

      2017.04.03 22:07
  • 파워블로그 게스

    오 책모임 만들었군요. 부럽부럽하고 다니지 않아도 되겠네요. 전 이 책 안읽었는데, 가장이 미친짓하려고 가족 버리고 집 뛰쳐나가면 남겨진 사람들은 뭐먹고 사나요? 지금이야 뭐 법적으로 양육비를 분담해야 하는 것도 있고 할테지만, 아 애가 없을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지금도 그런 사람들 종종 있지만 막 욕하자나요. 집에서 그냥 그림 그리면 안되나 왜 파리까지 가는지 ㅋㅋ

    2017.04.04 15:41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적반하장

      이제 처음이죠. 이렇게 뛰어 나가서 그냥 그렇게 살다 혼자 그림 그리다 살았으면 이야기 안되는데, 그러고 대성공을 거뒀으니 사람들 맘에 불을 지르나봐요 ㅎ 중간중간에 뭐 꼭 다 관두고 가서 그려야 하냐고 되묻기도 하고 그러죠 사람들이. 글 전체나 등장인물 하나 하나가 거대한 상징이니까요.

      2017.04.0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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