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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한 고양이

[도서] 공공연한 고양이

최은영,조남주,정용준,이나경,강지영,박민정,김선영,김멜라,양원영,조예은 공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다정한 존재, 공공연한 고양이 


이 책은 제목이 눈에 띄었다. 사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동물을 무서워했다. 특히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개와 고양이... 나를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동물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띈 건, 고양이 앞에 붙은 "공공연한"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로 "숨김이나 거리낌이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나는 잘 모르는, 공공연한 고양이가 무척 궁금해졌다. 

그리고 열 편의 짧은 소설을 모은 작품집의 작가진이 마음에 들었다. 요즘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는 신진작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최은영, 조남주, 정용준, 박민정 등...  개인적으로 하나의 주제나 소재로 여럿이 뭉쳐 한 권을 이뤄내는, 이런 협업 무척 좋아한다. 역시나 '고양이'에 대한 다양한 관계와 시선이 그 작가만의 문체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고양이가 전면에 드러나기도 하고 뒤로 한발 물러나 있기도 하고, 현실과 상상을 오가기도 한다. '고양이'에 대한 열 편의 이야기라 반복되거나 지루하지 않을까 싶은데 하나의 소재에 대한 주목받는 작가들의 글쓰기가 반짝인다. 

이 작고 귀여운 책 <공공연한 고양이> 속에 담긴 고양이에 대한 작가들만의 사소한, 공공연한 고양이 이야기들은 내가 누군가의 작은 이웃, 또는 그 자체로 작은 이웃에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나도 조금... 느슨해진 것 같다. 



최은영_임보 일기

모르는 곳에 나왔을 때 얼마나 무섭고 어리둥절했니. 나는 누가 널 버렸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윤주는 지하주차장 구석 모퉁이에서 크림색 페르시안 장모종 고양이를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간다. 3년 만에 팥빵이가 다니던 병원에 데려가고, 팥빵이의 화장실을 꺼내서 모래를 붓고, 팥빵이 전용 그릇에 사료를 붓고 물을 따라 준다. 죽은 팥빵이의 물건들. 팥빵이의 준재가 여전히 붙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윤주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윤주는 고양이의 사진을 찍어서 전단을 만들고 양해를 구하고 주변에 전단을 붙이고, 고양이 카페와 지역 카페에 가입해서 글을 올린다.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동물병원 원장은 실종이 아니라 유기일 거라며 윤주에게 키우라고 권하지만, 윤주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고양이를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한 달간의 동거엿지만, 이미 고양이는 윤주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 고양이는 천성이 다정한 아이였다. 두 달이 지나고, 윤주는 좋은 사람에게 입양을 보내기로 한다. 일주일 후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입양 문의 메일이 오지만, 윤주는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는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임신을 하거나 다른 가족들의 반대에 의해 파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생 아이 없이 살기로 했다는 그녀는 다시 윤주에게 메일을 보내고, 그녀가 예전에 올린 글들을 모두 읽고 나서, 윤주는 남편과 함께 고양이를 보러 오라고 메일에 답을 보낸다. 그녀는 이 끝이 어떨 것일지를 다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려 하는 사람이었다. 윤주는 고양이와 함께할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음은 아프지만, 행복한 헤어짐도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은 예감하면서. 



김멜라_유메노유메

나와 얘기를 할 수 있어 좋다더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못 하게 하고. 역시, 인간으로 사는 건 피곤하기만 하다. 크루아상이나 몇 번 더 먹고 고양이로 돌아가야지. 


고양이였던 유메는 어느날 사람이 되었다. 유메는 일본에서 태어난 고양이지만 사람이 된 후 한국말밖에 하지 못했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이런저런 호칭을 썼다. 엄마, 언니, 여보... "자기야! 오늘도 힘내!" 알 수 없는 이유로 인간이 된 유메는 밤낮없이 울기만 했고 미애는 유메를 위로해주기 위해 등을 쓰다듬거나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사람이 된 유메는 고양이 때와 별만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고양이일 때 '미야오, 미야오' 하고 울던 울음소리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하는 투정으로 바뀌었을 뿐. 그리고 그들은 어느새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 하는 스킨십의 선을 넘어버린다. "이러면 안 돼." 유메가 고양이였던 시절처럼 미애의 손에 콧등을 부딪치며 품으로 파고든다. 미애는 밖에 이러면 곤란하다며 여자와 여자, 인간의 도덕 법칙에 대해 설명하지만, 유메는 밖에 나가면 여자란 것에 갇혀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다시 고양이로 돌아가야겠다. 유메가 사람이 되어 좋은 건, 미애를 만질 수 있어서다. 미애의 코에서 나는 따뜻한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인간이 된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유메는 봄이 지나면 돌아가야 한다. 죽은 고양이들이 사는 나라로. "미안해.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애는 몇 번이고 반복해 꾸는 이 꿈의 장면들을 뒤짚어본다. "내 최고의 친구였어. 언제나 나의 엄마, 언니, 사랑하는 여보야. 이제 난 안 아파." 유메는 고양이와 인간을 넘나들며 미애의 꿈에 찾아와 위로했다. 까맣고 말랐던 새끼 시절, 한없이 여린 숨결로 미애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그 밤들처럼.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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