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을 따라 삼국지를 다시 읽다
어릴 적 한번쯤은 읽어봐야할 책이 삼국지였고, 책장 한 편에 소장해야할 책도 삼국지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삼국지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비와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로 시작하는 사나이의 의리가 멋있게 보였을지. 어려운 시대 속에서 여러 인물들이 펼쳐가는 다양한 이야기가 재미있었을지. 때로는 유비가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쉬워 유비가 삼국통일하는 이야기를 그려보기도 했고 조조의 재평가를 통해 시대가 변했음을 느끼기도 했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삼국지기행"이란 책을 만나, 이 책을 따라 역사의 현장을 가본다. 어릴 적 생각했던 삼국지에 대한 시각이 조금은 객관적으로 자리잡는 것을 느끼면서 글쓴이가 책 속에 실어준 사진을 통해서 어릴 적에 삼국지를 읽으면서 떠올리지 못했던 역사적 현장을 접하는 것이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역사 유적이 잘 보전되어있지 못한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문화 유산의 보존 유무와 현대 중국인들에게 대우를 받고 못 받고 하는 다양한 역사적 현장의 모습에서 또다른 역사를 느끼기도 한다.
삼국지와 관련된 많은 도서들이 세상에 나왔음에도 대부분의 서적이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한 경영, 처세술, 인물론 등 비즈니스와 자기개발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말 그대로 순수하게 삼국지 또는 삼국지 연의를 풀어쓴 책보다는 그때 당시의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을 바탕으로 경영론, 처세술을 풀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런 현상 또한 삼국지연의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듯 당대의 우리 사회 모습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 해본다. 유비를 주인공으로 촉한정통론을 내세운 삼국지를 읽었을 때는 유비의 죽음이 안타까웠고, 처세술과 경영에 능한 조조를 내세운 변형된 삼국지를 읽었을 때는 조조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당시 사회가 원하는 인물상에 따라 삼국지의 인물들도 변화해왔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나관중이란 이야기꾼이 쓴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당시 역사는 진수의 "삼국지"가 정사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원래 유비의 촉 출신이었으며 후주 유선 때 환관 황호의 권력에 뜻을 굽히지 않은 강직한 사람이었고 촉 멸망 후 진나라에서 삼국지를 저술하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촉 출신인 진수가 촉한정통론을 내세운 나관중과 달리 "조위정통론"을 취한 것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조위정통론을 내세운 진수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결국 우리가 아는 삼국지는 역사를 담고 있고 그 역사를 이루고자 했던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글쓴이의 [삼국지기행]에 나오는 책 속의 역사 현장과 문화 유산을 보면 삼국지의 인물들이 후대에 어떻게 평가되고 다루어졌는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역사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에 못지 않게 당대 사람들이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중요하며 이 책은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삼국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관우이다. 조조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요즘에도 관우의 인기는 여전하다. 관우의 고향인 산서성의 운성은 소금생산지로 유명하다. 이 책에 나오는 너른 염호의 사진은 그것을 증명해준다. 관우의 탄생설화에는 용이 얽혀있으며 이처럼 유명한 소금산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비롯된 관우에 대한 신앙와 같은 믿음은 삼국지기행 곳곳의 유적에서 나타나고 길흉화복을 비는 것을 비롯해서 많은 돈을 벌게 해달라는 것까지 다양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관우의 출생지가 부의 상징과 같은 소금의 산지라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삼국지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관우와 대비될 수 있는 인물이 조조이다. 조조는 [삼국지연의]에서 악역으로 나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조는 고향인 박주에서도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웃나라인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삼국지에서도 조조는 악역을 담당했었다. 그 모습이 점점 바뀌어가서 이제는 조조공원부터 조조의 사당, 조각상까지 다양한 유적이 있는 모습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조조는 뛰어난 전략가이자 지휘관이었고 정치가였으며 이는 모두 냉철한 현실주의에 근거하였다"고 글쓴이는 적고 있다. 냉철한 현실에 바탕을 했으니 이상적인 한의 부흥을 내세운 유비와 무척이나 대조되었을 것이며 삼국지연의가 유비, 관우, 장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상, 이를 상대할 악역에는 조조만한 인물이 없었을 것이다. 조조의 역사적 유적이 예전 조씨공원 안에 조조기념관 하나이던 것이 조조공원으로 바뀌고 조조의 이름을 딴 도로도 생기고 무덤도 복원되는 것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사는 항상 바뀌는 모양이다.
[삼국지기행1권]은 황건군의 초소가 있었던 황자촌에서 시작해서 손권과 유비가 정략결혼을 위해 만나서 바위를 가른 북고산의 시검석에 이른다. 글쓴이는 머리말에서 정사 "삼국지"의 사실과 "삼국지연의"를 비교하면서 영웅들이 누볐던 현장을 돌아보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반추해보았다고 했다. 글쓴이의 삼국지 기행을 쫓아다니다보면, [삼국지] 혹은 [삼국지연의]가 오래도록 읽히면서 조조가 재평가 되는 등 그 내용이 시대에 따라 바뀌고 때로는 경영론으로 때로는 처세술로 읽히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글쓴이와 함께 오늘날 삼국지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해본다.
이 글은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성안당(책문)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