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서울대공원 곰 사육장에서 일하던 기억을 더듬어 적은 글입니다.가볍게 읽어보세요^^
곰사 일과는 단순해서 석달을 지냈다고 해도 특별한 일은 없었답니다.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지요. 게다가 저는 정식으로 일한 게 아니어서 오전 8시에 나가서 2시에 끝내고 나왔으니까요. 원래는 9시에서 오후 3시였는데 오전에 일을 더 많이 한다고 해서 한 시간 일찍 시작했답니다. 그래도 집이 멀어서 8시 넘어서 도착하는 때가 많았는데요. 암튼...^^
보통 일과가 8시 조금 넘어서 출근하면 오전 11시 30분이내에 끝납니다. 그때 먹이까지 주고 청소까지 끝나지요. 오후는 2시 이후에 곰사 먹이주기 행사를 시작으로 다시 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저는 점심 먹고 방사장 앞에서 "곰한테 먹이 던지지 마세요"그러고 다니다가 다른 사육장도 돌아다니다가 퇴근했습니다.
그래도 뭐 나름 생각나는 대로 한번 적어보렵니다^^
아래는 아메리카 검정곰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느낀 것이 좀 더 좋은 사진기를 갖고 가서 찍어올 걸 그랬습니다. 사육장 내부에 들어가서 곰을 보게되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말이죠. 항상 사진기 가져가야지 하며 생각하다가 마지막 출근 날에도 그냥 지나치다보니 휴대폰으로 몇 장 찍은 것만 남았네요. 휴대폰도 옛날 거라서 화질이 약했는데 아쉽네요. 거기 주임님인 곰 찍어서 뭐하냐고 저한테 만날 그러시곤 했는데...
암튼 아래 곰 두 마리 좀 다정해 보이지 않나요? 제가 일한 때가 9월초부터 11월말이었는데 요 녀석들이 어느 순간부터 같이 어울리는 듯 싶더니 11월들어서는 한 놈이 먹이도 잘 안먹고 가만히 있길래 사육사 분한테 "한 놈이 좀 이상한데요"하고 물어봤더랍니다. 그랬더니 임신했다고 하시더군요. 아메리카 검정곰은 말 그대로 북아메리카 대륙에 사는데 크기는 사람이 엎드린 정도 입니다.
먹이 줄 때 보면 불곰처럼 공격적이지도 않고 대체로 얌전한 편으로 닭을 던져줄때도 입만 갖다데고 앞발을 휘젓거나 해서 위협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일 마치고 나올 때쯤부터 암놈이 구석에 가만히 있었으니 겨울 동면때 새끼를 낳았겠죠. 지금쯤이면 새끼가 많이 컸겠네요.
나름 동물원에 일하면서 행정인턴 정도의 일로 오래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 하는 동안은 뭔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곰사 숙직실에 있는 책을 뒤져보았는데요. 별다른 책은 없고 서울대공원에서 나온 낡은 제본에 재미없는 활자만 박힌 책 한권이 있더군요. 거기에 "식자증"이란 게 있었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식을 먹는 증세" 정도가 됩니다. 가령 산 하나에 수컷 곰 한마리가 살 수 있는 영역인데 여기에 다른 숫놈들이 늘어나면 한정된 먹이가 살기가 빡빡해지겠지요. 그렇게 되면 힘센 수컷이 다른 어린 수컷을 죽여버린답니다. 정확하게 잡아먹는 건지 아님 죽이기만 하는 건지 모르지만 참 무서운 일이지요. 어찌 생각하면 자연의 섭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곰을 다른 어떤 동물이 건드리기는 쉽지 않을테니까요.
어쨌든 일정한 공간에 곰 숫자가 많아지만 힘이 센 수컷이 어린 수컷들을 죽여버리는 모습이 있답니다. 이런 걸 "식자증"이라고 적어놓았던데 아마도 다른 적절한 명칭이 또 있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아 참! 검정곰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곰이 임신하는 것에 대해서 재미있는 게 있어요. 곰은 보통 두 마리 새끼를 낳는답니다. 아마도 "북극의 눈물"이란 다큐에서 암놈 한 마리에 두 마리 새끼가 따라다니는 모습을 헬기에서 찍은 풍경을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먹이가 부족하고 환경이 좋지 않으면 한 마리를 낳기도 한다는 데 이 두 마리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라는 사실... 다들 알고 계셨는데 제가 괜히 아는 척 한건가요?^^;;
수컷하고 암컷이 교미를 하면 수정이 이루어져서 아기 곰이 생기는데 암컷은 보통 동면할 때 아기곰을 낳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때에 수정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일부러 동면하는 시기에 맞추어서 아기가 나오게끔 조절을 한다는군요. 먼저 수정된 아기곰이 동생 나올 때 사이좋게 나오려고 기다려 주는 셈이지요. 참 신기하지요^^
이런 잡다한 지식들을 숙직실에 있는 딱딱한 교본 같은 책하고 나름 또 전문적으로 일해보고 싶은 욕심에 - 그래 봤자 먹이 주고 청소하는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그랬답니다. 책을 찾아보다 느낀 것인데 곰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쓴 책은 잘 보이지 않더군요. 주로 북극곰에 대해서 많이 다루었는데 여기 있던 말레이 곰이나 아메리카 검정곰 등은 잘 안보이더라구요.
나중에 어린이날 석영이 데레고 곰 사육장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곰사 앞에서 반달곰인 "아리랑 쓰리"를 보여주면서 직원분이 열심히 설명하고 계시더군요. 아마도 곰사 옆에 새끼만 있는 곳이 검정곰 새끼가 있었을 텐데 가서 보고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9월에서 11월초까지 일했었는데 11월이 되면서 떨어지는 낙엽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사육장 앞 산수유 나무 아래에 앉아서 옆에 철장안의 곰도 쳐다보고 낙엽 떨어지는 것을 쳐다보는 재미도 괜찮았더랍니다. 약간 서늘한 날씨, 따스한 햇살, 나른한 오후, 어느덧 2년이 지났네요. 11월 중순인 지금 낙엽이 곳곳에 아름답게 있는 걸 보고 있노라니 그때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