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들과 함께 했던 가을의 기억들"이란 제목으로 "월간 교정"지 독자글에 올린 글입니다. 덕분에 소정의 원고료도 받고 ^^ 직장에서도 많이 아는 체를 해주시더라구요. 지면 관계인지 원본하고 약간 편집하셨던데 여기 블로그에도 올려봅니다. 지금까지 쓴 동물원 이야기의 축약본이라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사진은 제가 추가했습니다.
- 곰과 함께 했던 가을의 기억들 -
-월간 교정, 11월호 56-57면 -
서울구치소 뒤편에 보면 청계산이 있고 그 산 너머에 서울대공원이 있습니다. 서울구치소 담장 밖 개나리가 핀 모습을 보다보니 예전에 서울대공원 곰 사육장에서 가을 무렵에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일했던 일을 잠깐 적어볼까 합니다.
군 전역 후 직장 잡기도 힘들어서 이리저리 일거리를 구하다가 잠시 동물원에서 일했습니다. “서울시 행정서포터즈”라고 서울시에서 하는 행정인턴 비슷한 것이었는데 마침 공고가 나서 지원했더니 다른 자리는 다 차고 동물원이 비었다고 해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남자이고 나이도 많아서 그런지 맹수사육장에서도 곰사 - 곰이 있는 곳을 줄여서 “곰사”라고 하더군요 - 로 배정받았습니다.
사람들이 관람하는 방사장 뒤편으로 다른 곰들이 있는 사육장이 있습니다. 사육장 앞에 있는 산수유 나무 아래 출퇴근용 자전거가 놓여 있고 일 끝나고 잠시 앉아서 쉬던 플라스틱 의자도 있습니다. 바로 옆 우리에는 커다란 불곰 두 마리가 있답니다.
[산수유나무가 있던 곰사 풍경입니다,
나무 아래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앉아서 햇살 받고 있으면 참 좋았었지요^^]
곰사에서 제가 한 일은 단순합니다. 아침 8시 좀 넘어서 자전거 타고 대공원 지하철역에서 곰 사육장까지 힘들게 올라가면 사육사 님이 먼저 나와 계시지요. 그럼 먼저 그 전날 받아두었던 사료를 - 커다란 씨리얼 비슷하게 생겼어요 - 방사장과 뒤편 우리에 있는 곰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곰이 사료 다 먹었겠다 싶을 때쯤 청소를 시작하지요.
곰이란 놈들은 참 지저분합니다. 그냥 우리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선 채로, 앉은 채로 똥오줌을 갈겨대지요. 그래서인지 바닥이 물청소하기 쉽게 시멘트로 되어 있습니다. 청소 할 때는 기다란 호스를 풀어서 우리 안에 죽 뿌리면서 시원스럽게 바닥에 쌓인 똥오줌을 쓸어낸답니다. 그럼 곰들은 슬슬 피해서 다니지요. 한참을 청소하고 나면 저 같은 초보들은 옷이 다 젖어있습니다. 아마도 곰이 응가한 물이겠지요. 그러고 나서 잠시 쉬고 있으면 "밥차"가 옵니다.
곰에게 줄 닭, 고구마, 사과 등이 오는데 세발 수레를 들고 나가 담아 와서는 적당히 쪼개고 나누어서 곰들한테 나누어 줍니다. 요 녀석들은 먹이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는 지라 먹이 들고 가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서성대다가 가끔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반으로 쪼갠 닭을 잘 나누어 주어야지 안 그러면 금세 싸움이 납니다. 가까운 우리 안에 유럽 불곰이 마치 고독한 철학자처럼 철장을 앞발도 딛고 먼 곳을 보면서 서 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먹이 생각만 가득할 겁니다. 저 시선의 끝에는 아마 제가 플라스틱 통에 먹이를 들고 오고 있겠지요.

유럽 불곰 옆에는 아메리카 검정곰이 있습니다. 아메리카 검정곰은 말 그대로 북아메리카 대륙에 사는데 크기는 사람이 엎드린 정도입니다. 먹이 줄 때 보면 불곰처럼 공격적이지도 않고 대체로 얌전한 편인데 한 놈이 - 아마도 암놈일 겁니다. - 먹이도 잘 안 먹고 가만히 있길래 사육사 분한테 "한 놈이 좀 이상한데요" 하고 물어봤더랍니다. 요 녀석들이 어느 순간부터 같이 어울리는 듯 싶더니, 임신했다고 하시더군요. 저 나올 때 암놈이 구석에 가만히 있었으니 겨울 동면 때 새끼를 낳았으면 지금쯤 새끼가 많이 컸겠네요.

검정곰이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곰의 임신에 대해서 재미있는 게 있어요. 곰은 보통 두 마리 새끼를 낳는데 아마도 "북극의 눈물"이란 다큐에서 암 놈 한 마리에 두 마리 새끼가 따라다니는 모습을 헬기에서 찍은 풍경을 보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먹이가 부족하고 환경이 좋지 않으면 한 마리를 낳기도 한다는 데 암튼 이 두 마리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랍니다. 수컷하고 암컷이 교미를 하면 수정이 이루어져서 아기 곰이 생기는데 곰은 보통 동면할 때 아기 곰을 낳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때에 수정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일부러 동면하는 시기에 맞추어서 아기가 나오게끔 조절을 한다는 군요. 먼저 수정된 아기 곰이 동생 나올 때 사이좋게 나오려고 기다려 주는 셈이지요. 참 신기하지요. 이런 잡다한 지식들은 숙직실에 있는 딱딱한 교본 같은 책을 읽거나 전문적으로 일해보고 싶은 욕심에 도서관에 있는 책도 보면서 조금씩 알아냈답니다.
구치소에서는 여름이 되니까 사동 순찰 다닐 때마다 사람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납니다. 그래도 날이 더운데 마스크 쓰고 다닐 수는 없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 이제는 적응할 만도 한데 아직도 알 수 없는 그 냄새에 적응하기가 어렵네요. 그때 곰 사육장에서는 곰의 분비물들로 냄새가 지독했었는데요. 물론 사람 냄새에 비길 것이 못되지요. 전 청소할 때 마스크 쓰고 했었는데 거기 사육사 분 중 한 분은 그냥 청소 하시더군요. 첨에는 괜히 한 소리 들을까봐 마스크 안 쓰고 했었는데 물에 튀기는 분비물 냄새가 도저히 못 버티게 만들었답니다. 사동 돌다보니 그때 그 진한 냄새 생각이 나네요.
곰 하면 반달가슴곰을 빼 놓을 수 없는데 반달가슴곰을 보면 참 재미있게 생겼습니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웃기게 생겼지요. 가만 보면 머리에 털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뾰족한 코와 눈 주위를 비롯한 얼굴 부분에 털이 없습니다. 귀는 또 동그랗게 생겼어요. 마치 조그맣고 머리 큰 아기가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두르고 코에 루돌프 코를 검정색으로 칠해서 붙인 듯한 모양이랄까요. 서울대공원가면 오후 2시 좀 넘어서 반달곰 먹이주기 행사가 있습니다. 곰한테 사육사가 먹이를 던져주면 앞발과 머리를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듯이 꾸벅이지요. 방사장에서 지내면서 인사하는 버릇이 있는 두 마리 반달가슴곰을 "아리"하고"쓰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요 녀석들이 꼭 사육사가 주는 먹이에만 반응하는 건 아니어서 일반 관람객들이 먹이를 주려고 폼만 잡아도 꾸벅꾸벅 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먹이를 던져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육사님 말 들어보니 일반 관람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다보면 정해진 먹이를 잘 먹지 않고 탈이 나기 쉽다는 군요. 굳이 비유하자면 어린 아이가 과자만 먹다보면 밥을 잘 먹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가을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대공원 역에서 곰사까지 올라가던 길이 생각나네요. 지하철역에 내려서 맹수사의 곰사까지 가는 길이란 걸어서 꼬박 40분이 걸렸답니다. 대공원 정문이 딱 절반 정도 되지요. 미리 역 근처에 갖다놓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데 자전거를 타도 오르막길이라 힘이 들어요. 그래도 낙엽이 날리는 죽 뻗은 가을 길을 지나다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지요. 가끔 안개가 낄 때면 풍경이 그럴 듯 했답니다. 그렇게 세 달 동안을 다녔습니다. 처음 출근할 때는 햇살이 따뜻하고 반팔도 괜찮을 때였습니다. 산수유 나무 아래서 일을 마치고 따스한 햇살에 졸던 기억도 납니다. 마지막 출근 때는 쌀쌀한 기운에 긴팔 위에 잠바를 하나 더 입었었지요.
생각해 보면 구치소 사동에서도 계절이 참 빨리 지나갑니다. 1월에 배명 받고 겨울에 눈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중번 순찰을 돌았었는데 어느새 담장 밖에 개나리가 피어있고 햇볕이 따뜻해지더니 금세 여름이 되어 새벽에도 더워서 잠을 잘 못잘 정도가 되었네요. 그리고 이제는 다시 새벽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습니다.
그때 곰사에서 일할 때처럼, 삭막하기만 하던 담장 안에서도 계절의 변화가 찾아옵니다. 눈, 개나리, 가족만남의 집 앞의 개망초 군락, 코스모스가 순서대로 미소짓고 갑니다. 신규로 들어와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제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면서, 그 때 곰에게 사료를 주고 잠시 쉬면서 잠시 자판기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쳐다보던 대공원에서의 짧은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그 곰들은 여전히 사육사가 주는 먹이를 먹고 잘 지내고 있겠지요? 언제 한번 구치소 뒤편 청계산을 넘어 안부 전하러 찾아가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