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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간을 방부 처리할 수 있는 소금은 없는가

 

그러고 보면 소금은 찌꺼기이다/ 태양이 마지막까지 거두어가지 않는/ 버림받음인 것, 잔류인 것

(민음의 시 52  이문재 시집 <산책시편> 중 염전중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산하를 누비던 김훈이 서해안의 한 염전에서 만났던 소금은 고요한 소금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뜨거운 폭양 아래서 익어가는 옥구 염전의 소금은 한여름 대낮의 눈부신 적막처럼 고요하다. 고요한 소금은 염부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람 없고 햇볕 뜨거운 날에 저절로 오는 것이다.

바다의 짠맛과 더불어 햇볕의 향기가 가득 담겨 있는 이 고요한 소금은, 벌판에 내려 쌓이는 함박눈처럼 와서 염전의 바닥에 부드럽게 쌓인다. 이런 고요한 소금의 삼투력은 깊고 그윽해서 젓갈을 익히고 재료들의 향기를 드러나게 한다고, 김훈은 말한다. 김훈의 소금은 방부제이자 또한 향료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 시인 이문재가 만난 소금은 김훈의 소금과는 딴판이어서 마음이 아프다. 이문재의 소금은, 십팔 년 만에 중학교 동창회에 우연히 끼어들어 낮술 마시고 빈칸이 더 많은 주소록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에 모교 염전중학교가 안 보이는 언덕빼기서 토악질한 토사물에 담겨있는 소금이기 때문이다. 이문재의 소금은 찌꺼기로 남은 것이다. 태양이 마지막까지 거두어가지 않은 버림받은 것이다. 모두들 눈여겨보지 않으며 설령 보았더라도 외면하고 지나쳐버리는 잔류인 것이다.

야 이 새끼야 뒈진 줄 알았다, 라고 웃고 떠들어대는 중학교 동창들과의 반가운 해후도 시인의 쓸쓸한 마음을 돌이키는 데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전속력으로 늙어가는 그들의 얼굴에서 시인은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지난 세월을 더욱 실감할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토악질 끝에 탄식한다. , 십팔 년이……가버렸다!

 

그렇다. 시간을 방부 처리할 수 있는 소금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란 기껏해야 시간의 찌꺼기일 뿐이며 잔인한 시간이 한 조각 가지고 있는 손톱만한 자비심이 겨우 허락한 잔류에 불과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허락된 그 찌꺼기와 잔류조차도 그것들을 지탱해 주는 상관물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버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그 입지가 갈수록 옹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땡볕 속을 걸어서 그리고 그 땡볕 속에 김훈이 말한 것처럼 고요한 소금이 오던 염전들을 좌우로 둘러보면서 시인은 중학교를 다녔을 터인데, 지금은 그 염전들이 없다. 염전들이 있던 자리에는 김포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섰다. 시인의 머리 위에는 그때의 그 땡볕이 여전한데, 그래서 그는 토악질을 하다 말고 그 햇빛을 정확히 올려다보고 있는 것인데, 그 뜨거운 햇빛을 타고 오던 고요한 소금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염전들이 그 많은 소금을 쌓아두고도 속절없이 사라지고 만 것처럼 우리의 기억이 아무리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해도 시간을 붙잡아두지는 못한다. 시간을 방부 처리할 수 있는 소금은 없으며,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추억도 서서히 썩어서 언젠가는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시인이 중학교를 다니던 3년 내내 매주 조회 시간마다 목청껏 불러제꼈을 교가의 첫 구절을 끝내 떠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 세상의 모든 소금에게 묻노니, 시간을 방부 처리할 수 있는 소금은 정말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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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장미

    시간을 방부처리하는 소금이 있으면 '추억'이라는 아름다움이 사라지겠죠...

    근데요... 오늘 방문자수가 525명... 으악~~~

    2007.01.30 08:5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은이후니

      메인에 뜬 영화리뷰 '100% Pure New Zealand 영화' 덕분인 모양이네요. 근데 이거 2주전에 쓴 건데 지금 올라오다니... 업데이트 너무 느리다. 글구 메인에 오르고 메일 편지 공감에 올라도 국물 한 방울 안 떨어지네. 에궁...

      2007.01.30 08:57
  • 마리에띠

    1233 오늘 방문자수.. 정말 이건 엽기적인걸요.
    그러게 예스는 메인에 오르고 메일로 보내는 포스트에는 뭔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내게도 국물 한 방울 떨어질라나요? ㅎㅎ

    2007.01.30 21:48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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