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7년전, 파리에 갔었다. 에어프랑스기의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영원처럼 느껴지던 열두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말로만 듣던 루브르 미술관이며 베르사유 궁전, 로댕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등을 직접 볼 수 있다는 환희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감은 곧 절망으로 바뀌어버렸다. 하필이면 그 때 파리의 모든 미술관들이 모조리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정말이지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 때 허탈하게 돌아오면서 반드시 다시 돌아와서 일주일동안 미술관만 질리도록 돌아다녀야지 다짐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껏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파리의 미술관에 대한 이런 진한 미련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리블루',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을 보는 순간 7년전의 아픔이 생각났고 그 아쉬움을 간접경험으로나마 달래볼까 싶은 생각에 얼른 집어들게 되었다. 책을 우선 주르륵 흝어보니 풍경보다는 사람들 사진이 많이 눈에 띈다. 키스하는 연인들, 포옹하는 연인들, 나란히 서서 그림을 감상하는 연인들... 나쁘지 않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갔을 때 무슨무슨 유명한 장소를 찍은 사진보다는 그곳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찬찬히 책장을 넘기면서 조금씩 의아해진다. 이 책의 정체성이 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흔히 말하는 여행기는 아니다. 파리에 가서 사진도 찍고 그곳에서의 감상도 적고 했으니 여행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회상이 너무나 많다. 작가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미술관에서의 감상과 그것들을 섞어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라 부제가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결국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뭔가 어정쩡한 내용의 책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참으로 아쉽다. 파리의 미술관들과 나는 아직 인연이 아닌가보다.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볼 수 있기를 바라며 아쉬운 마음을 접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