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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변화

[도서] 사소한 변화

히가시노 게이고 저/권일영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히가시노 게이고, 권일영 역, [사소한 변화], 비채, 2019.

Higashino Keigo, [HENSHIN], 1994.

 

  지난번 인생 이야기에 이어서 이번에는 복수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코로나19로 집콕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성장이나 화해의 메시지보다 자극적이고 통쾌한 복수극을 원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소한 변화]는 여기에 살짝 못 미치는 아쉬움이 있다...;; 원서의 제목은 [변신](變身)이다. 뇌 이식 수술을 소재로 한 인간의 인격이 변해가는 과정을 스릴 있게 묘사한다. 작가 특유의 가독성과 흡입력 있는 글솜씨는 당연하고... 그런데 복수가 없다!

 

  "뇌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선 안 돼. 심장이나 간장과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에 걸쳐 단순한 세포에서 진화한 것이지. 기독교 신자라면 모두 신이 만들어주신 거라고 하려나?"

  "그렇지만...... 뇌는 특별하죠."

  "기계로 비유하면 컴퓨터지. 그래서 고장 난 부분은 수리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품 교환도 할 수 있네. 자네도 망가진 기계를 수리하는 전문가잖아. 심장부가 망가졌다고 해도 냉큼 포기하지 않을 거야. 아니, 심장부라는 표현은 좀 헷갈리겠군. 중추부라고 해야 하려나?"(p.57-58)

 

  사람의 몸은 뇌의 지배를 받는 것인가? 아니면 뇌는 장기처럼 하나의 기관에 불과한 것인가? (인터넷에 떠도는 사연으로 근거는 불분명한데) 간혹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이 바뀐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뇌는 이식이 가능할까? 기억력과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이식한 뇌는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까? 나루세 준이치는 부동산 회사에서 무장 강도를 만나 머리에 총상을 입는다. 모두 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지만, 도와 대학 의학부 뇌신경외과에서 세계 최초로 성인 뇌 이식 수술에 성공한다. 다른 사람의 뇌 일부를 사고로 손상된 곳에 부분 이식한 것이다. 마치 기계 부품을 교체하듯이...

 

  "네 머리에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뇌가 조금 들어 있는 거지?"

  "맞아."

  "그렇지만 넌 역시 너겠지......?"

  "무슨 소리야. 난 나지. 다른 누구도 아니야."

  "그럼 만약 뇌를 전부 교체하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역시 넌 너일까?"(p.102)

 

  내 안의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분명히 예전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대체 누구인가?(p.139)

 

  그는 회복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소한 변화를 감지한다. 성격과 취향이 바뀐다. 회사 선배와 주먹다짐을 하고, 여친과의 데이트가 지루하다. 폭력성과 살인 충동... 예전하고 아주 다르다.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의 혼란이 시작된다. 나루세 준이치는 변신하는 중이다.

 

  긴 의자에 드러누워 이중인격에 대해 생각했다. 어렸을 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이브의 세 얼굴>이란 영화도 있었다. 두 이야기를 돌이켜보면 나는 이중인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중인격자란 전혀 다른 인격을 지니며 대개 다른 인격이었을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갑자기 다른 인격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모든 행동은 내 의지에 따른 것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지금 증상은 이중인격보다는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는 걸까. 하지만 이중인격보다 나쁜 점도 있다. 원래 인격이 차츰 사라진다는 사실이다.(p.203-204)

 

  시간이 갈수록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 수술의 부작용? 뇌 제공자는 누구? 변신을 멈추는 방법은 있을까? 자기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면서 밝혀지는 뇌 이식 수술의 비밀...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큰 손이 있다. 그래서 부작용도 실패도 용납할 수 없다. 인간의 고뇌와 탐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신은 몰라. 뇌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지껄이는 당신은 말이야. 뇌는 특별한 거야. 당신이 상상이나 할 수 있어?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내가 달라. 내일 눈을 뜨면 거기 있는 건 오늘의 내가 아니지. 먼 과거의 추억은 전혀 다른 사람 것이 되고 말지.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아. 오랜 시간을 들여 남겨온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려. 그게 어떤 건지 아나? 가르쳐줄까? 그건......" 나는 도겐의 코 바로 앞에 검지를 들이댔다. "그건 죽음이야. 살아 있다는 건 그저 숨이나 쉬고 심장이 뛰는 게 아니야. 뇌파가 나온다고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산다는 건 발자국을 남기는 거지. 뒤에 남은 발자국을 보며 저건 분명히 내가 낸 거라고 알 수 있어야 살아 있는 거야. 하지만 지금 나는 예전에 남긴 발자국을 봐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이십 년 이상 살아온 나루세 준이치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고."(p.270)

 

  문득 데카르트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의 존재는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내가 하는 생각이다. 내가 하는 생각이 사라지면, 그 순간 나도 없다. 자기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사소한 변화로 시작해서 조금씩 변신해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눈빛, 성격, 취향, 그림, 음악충동적인 복수심... 결국 폭주한다. 그런데 복수는 없다! 엄한 희생자만 있을 뿐...

 

  뇌 이식이라는 소재가 지금은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원서를 처음 출간한 1994년에는 어떤 충격이었을까? 당시의 뇌과학에 관한 논리가 인상적이다. 언젠가는 뇌의 비밀도 밝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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