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즈키 린타로, 이기웅 역, [1의 비극], 포레, 2013.
Norizuki Rintaro, [ICHI NO HIGEKI], 1991.
오래전에 출간했는데, 최근에 tvN 드라마 <더 로드 : 1의 비극>(2021.)으로 제작되어 다시 주목받는 책이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는데, 입소문으로 늘 관심 두는 작가이다. 그만의 매력은, 작품 안에 자신의 이름을 가진 캐릭터(노리즈키 린타로라는 탐정)를 등장시켜 독자로 하여금 허구와 현실을 헷갈리게 하는 재주가 있다. 한 남자가 과거에 벌인 잘못은 현재에 올무가 되어 가족을 불행에 빠뜨린다. 제목으로 비극인 것을 알겠는데, 왜 '1의' 비극일까?
"운이 좋았군. 범인이 엉뚱한 실수를 안 했으면 저기에 당신 자식이 있었을 텐데."(p.16)
도미사와 시게루는 내 아들이다.(p.18)
그제야 상황이 파악됐다. 범인은 아이를 오인 유괴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다카시와 시게루를. 다카시가 무사한 대가라고 하지만 이런 잔인한 착각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어떤 의미에서 최악의 궁지에 몰린 셈이었다. 등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p.43)
종합광고대행사 신토 애드에서 SF(세일즈 프로모션) 국장으로 있는 야마쿠라 시로는 아들이 유괴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괴범은 오인해서 아들 다카시가 아니라 같은 반 친구인 도미사와 시게루를 데려갔다. 표면적으로 범인은 야마쿠라 가가 아닌 도미사와 가의 아이를 잘못 납치한 것이지만, 실상은 시게루 또한 시로의 아들이다. 7년 전에 아내 모르게 외도로 낳은 아들... 일인칭 시점의 전개는 급박한 심리를 잘 묘사한다.
미치코가 자책하는 데는 말 못 할 이유가 있다. 두 아이는 자연스럽게 사이가 가까워진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미치코의 의지가 있었다. 미치코는 나를 압박하기 위해 다카시와 시게루를 친구 사이로 만들었다. 복수극의 1막이었다. 그런데 얄궃게도 그 공작이 오늘의 오인을 초래했다. 애당초 친구는커녕 서로 알 일조차 없던 아이들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미치코 본인이 아이를 궁지로 몰아넣은 셈이다. 이런 결과를 자초한 스스로를 지독히 원망하고 있으리라.(p.63)
책임이란 결국 주관적인 것이다. 객관론이란 책임 회피의 한 편법에 불과하다.
...
"당신이 시게루를 죽였어!"(p.107)
시게루에게는 아무 죄도 책임도 없다. 시게루는 자신이 바라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와 미치코의 도리에 어긋난 관계가 시게루라는 존재를 탄생시켰을 뿐이다.
그럼에도 내 증오는 미치코가 아니라 그 결과로 탄생한 시게루에게 향해 있었다. 미치코를 증오할 수는 없었다. 미치코를 증오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증오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때 일을 우발적인 사건으로 인식했다. 나와 미치코는 불우한 길동무였을 뿐이다. 시게루만 없었으면 그 일은 과거의 신기루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죄는 모두 시게루라는 존재에 응축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시게루가 다카시와 같은 반이 되어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견디기 힘든 공포감을 줬다.(p.146)
아들을 대신해서 납치된 아이를 구해야 하는 도의적 책임과 현재의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이기심... 아이를 구하되 그 아이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세상이(아내가) 알아서는 안 된다. 시로는 유괴범이 요구하는 돈을 들고 약속 장소에 나가지만, 치명적인 실수로 몸값 전달에 실패한다. 곧이어 시게루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범인을 찾기 위한 노력은 남모르게 과거의 아픔을 하나씩 들추어야 한다. 가족사의 비밀, 원한, 복수...
"알아냈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 이름이 특이하지만 본명입니다. 직업은 추리작가."
"그랬군." 그래서 경찰과 아는 사이겠지. "잘 팔리는 작가인가?"
"책을 몇 권 냈지만 베스트셀러라 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직 상과도 인연이 없고요. 서평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군요. 꽤 통렬한 서평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노리즈키는 순전한 백치거나, 번드르르한 모방자거나, 혹은 둘 다다.'" 구로다가 인용하며 폭소를 터뜨린다.
"대단한 작가는 아닌 모양이군. 아직 젊은가?"
"예, 서른이 안 됐습니다. 아직 미혼이고, 홀아비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이른바 부자 가정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다름 아닌 경시청 수사 1과 경사네요."(p.153-154)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의 등장... 경시청 수사 1과 경사의 아들로, 아마추어 범죄연구자로, 추리 작가로, 기괴한 사건의 해결사로, 엘러리 퀸 이후 최고의 명탐정으로 활약한다. 그는 함정에 빠진 시로를 도우며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는데...
지금은 익숙하지만, 초반부터 몰아치는 연속된 반전은 아주 신선하다. 사연 많은 인생과 그릇된 행동으로 일어난 사건은 일본 미스터리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책임감과 이기심 사이에서 가정을 지키기 위한 내적 고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범인의 유추는 실패했다.
일인칭으로 서술하는 '1의 비극'외에 삼인칭으로 서술하는 '3의 비극'이 있고, [요리코를 위해](포레, 2012. 모모, 2020.)하고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