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이 떠오른다.
한 때에는...정말 타인에 대한 애정으로 넘쳐나던 시절이...
좋은게 좋은거라고. 내가 잘하면 되겠지, 내가 더 잘하면 되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다 부질없었던.
이 책을 읽는게 읽는게 조금 생뚱맞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너'라는 존재에 대해서 관심이 없기에.
작가의 초기 작품인 '어비'라는 소설집(?)을 제외하면, 대부분 다 읽어낸 것 같은데 이 소설집에서 살짝 갸우뚱 하게 된다. 이미 '딸에 대하여'나 '불과 나의 자서전'같은 곳에서 써먹었던 클리쉐가 반복된다. 또 소설집이다 보니, 하나의 연주곡에 대한 변주곡이라도 되는 듯이 여러 Variation을 보여주는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다소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나'에 대비하여, 애초부터 어울릴 것 같지 않은'너'가 반복되는데...공감이 조금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만나지 말 것이지...
레즈비언의 이야기라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단편이 있고, 그렇진 않지만 죄다 여성들간의 이야기인데...뭐 이건 젠더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냥 나와 너의 이질감에 대한 끊임없는 이야기들.
주인공들이 하나 같이 돈이 아주 많지는 않은데, 그냥 어느 빌라촌이나 남루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는 것처럼 칙칙했다. 한지붕 세가족처럼 따뜻하진 않고, 이제는 거의 고착화된 현대의 피곤하고, 쏴~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지리멸렬한 삶에 더 회의를 느끼게 하였다.
글은 기존 작품처럼 잘 읽혔으나...뭔지 모르게 김이 빠지는 것은, 아마 주제와 소재의 반복때문이 아닐까 한다. 작가가 롱런을 하고 싶다면 조금 더 넓고 깊은 고민을 해야하지 않을까. 나는 김혜진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보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