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하루 휴가였다.
오늘을 대비하여, 뭣 좀 만들어 먹어야겠다 싶어서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쇠고기에 갖은 양념을 한후에 어제 재워놓고 잤는데...아침겸 점심으로 그거나 좀 구워먹을 요량이였다.
그 찰나, 내가 휴가인줄 알고 있는 친구가 지금 서울 올라오는 중인데, 잠시 얼굴을 좀 볼 수 있겠냐는 전화가 왔고, 나는 나가기도 귀찮으니 그냥 집에와서 밥이나 먹고 가라고 했다.
막상 찾아온 친구는 혼자가 아니고, 새로 사귄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대충 식탁에서 간단히 먹으려고 했는데, 친구의 여친까지 대동하고 나타나니..어쩔 수 없이 큰 상을 펴게 되었다.
상이 크니, 불고기 재워놓은 것에 국물이라도 만들어야겠다 싶어서...집에 굴러다니는 오이로 오이 냉국을 만들고 주말에 뽑아놓은 이런 저런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고...냉장고 한 켠에 나 혼자 먹으려고 얼마전에 사두었던 제주 은갈치까지 굽게 되었다.
'차린 것은 별로 없지만~' 하고 말하다보니...이건 너무 많이 차려낸 것이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사에 친구보단 그 여자친구가 더 고맙고 송구스러워했다.
셋이 앉아서 밥숟가락을 들려던 찰나에...
이 여자가...갑자기 '어흑~'하고 울어버렸다.(왜???)
나와 친구는 눈이 똥그랗게 되어 넋놓고 그녀를 바라보다가는 내가 먼저 티슈를 집어주며,
"왜그래요? 식사에 무슨 문제 있어요??"
라고 이야기했더니, 그녀가 휴지를 눈물로 닦으며 하는 말이...
먼저 "죄송합니다"였고, 그 다음이...
계속 울먹 울먹하며, "오이냉국 맛을 보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요"라고 이야기를 했다.--;;
살짝 당황스러웠다.
처음 남의 집에와 오이냉국 쳐먹으면서..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렸다는 것도 당혹스러웠고..내가 무신 시골 어디 난전에서 국밥집이라도 하는 여편네라도 된 것처럼...식사 한끼에 혐오감이 확~~ 느껴졌다.
그 순간을 빼고는 괜찮았다.
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친구는 네이티브 강원도라서 일단 공기는 싹 비웠고, 이 여자도 갈치뼈까지 씹어먹을 정도로의 식성도 좋았고, 불고기 양념을 밥그릇에 담더니 썩썩 비워먹는게 보기 좋았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먹이고, 보내버렸다.
보내면서 설거지를 하는데, 나의 음식솜씨와 나의 남성性과 나의 휴가가 뒤죽 박죽이되어..영 심기가 불편하더니, 끝내는 오후 시간을 계속 툴툴 거린 상태로 있게 되었다.
서울 일을 다 마치고, 이 녀석이 또 우리집에 들렀다.
아까 빈손으로 왔던 것이 미안했는지..과일을 여러 봉지 사들고 왔는데,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마찬가지로 차를 한잔 먹여서 빨리 보내버려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녀석이 계속 싱글벙글했다.
"아까 너무 감동적이였어. 어떻게 밥상을 그렇게 차려낼 수가 있지? 우와..특히, 엄마의 오이냉국을 떠올릴때..내가 그녀를 콱 안아주고 싶었어. 잘 해볼까봐. 그래서 올 가을에 그녀와 결혼했으면 좋겠어"
나는 담배를 태우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음식맛이 돌아가신 엄마 맛이랑 너무 똑같더래. 서울 가면서 계속 그 이야기만 하더라구... 내가 다 뿌듯하더라. 니네 집에 들려보길 잘한거지."
나는 담배를 비벼 끄면서 심드렁하게 물었다.
"음식...다 맛있더래?"
"응"
"그럼...결혼하지마"
친구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왜그러냐고...그녀의 무슨 나쁜 모습이라도봤냐고.
나는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며 이야기했다.
"나는 내 친구가, 평생...
빙초산,미원,쇠고기 다시다 같은 것으로 범벅된 음식을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해먹는 양념 반찬은...조미료 덩어리거든.
갸네 엄마도 음식 솜씨 어지간히 없었나부다. 오이냉국에 들어간 빙초산과 조미료가 한 국자거든. 결혼해서 조미료에 밥말아 먹든 말든..그건 니 알아서 해!! 사랑의 힘으로 조미료..극복하면 되는거 아니겠어?
갸는 조미료만 한 봉지 안겨주면, 엄마 생각하면서 눈물 뚝뚝 흘릴 아이더구만.
알아서해라...난 모르겠다."
사랑한다 친구야...
하지만, 니가 조미료 범벅녀와 결혼하는 것에까지 찬성할 생각은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