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 버린 사람들의 도시, 바그다드
이라크에서 전쟁이 나던 날, 나는 정말 망연자실했습니다. 바로 몇 달 전만 해도 별빛을 바라보며 밤 산책을 하던 티그리스 강변, 순진한 얼굴을 한 시민들을 만나던 시장 골목, 그리고 나의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있는 바그다드가 폭격으로 스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요르단 암만에서 전쟁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군이 바그다드로 예상보다 일찍 들어가서 전쟁은 20여 일 만에 정리되는 듯했습니다. 그때 바그다드로 들어간 나는 무너지고 불타는 도시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이라크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했습니다. 한 아주머니는 불타는 건물을 가리키며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바그다드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너무 슬퍼요. 바그다드가 어떤 곳인데….”
그때 본 바그다드 사람들은, 살아 있지만 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두려운 눈빛과 절규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쟁이 났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불행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이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이런 현실을 보니 나도 무서워졌습니다. 내가 머릿속에서 상상하거나 영화로 봤던 것은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은 더 무섭고 잔인했습니다.
ⓒ김영미
전쟁이 나기 전, 평온했던 바그다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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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로 들어온 지 2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차를 타고 가다가 미사일이 날아와 폭격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미군이 오폭을 했는지, 아니면 사담 정부의 주요 인사가 그곳에 숨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폭격으로 민가 세 채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세 집 가운데 있던 공터에 미사일이 떨어지며 엄청난 크기의 구덩이를 파 놓았고, 매캐한 화약 냄새와 피 비린내로 현장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이 폭격으로 모두 20여 명의 가족이 아침밥을 먹다가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어느 한 집의 가장만 살아남았습니다. 전파사 주인인 그는 아침에 아이들 먹을 계란을 사러 집에서 50미터 떨어진 동네 구멍가게를 갔던 것입니다. 맨발로 길가에 맥없이 앉아 있던 그는 울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습니다. 그의 손은 깨진 계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통역 제난과 함께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물 한 병을 주며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맡긴 라디오는 아직 다 고치지 못했어요. 오늘 오후에 다시 들러요. 제가 말끔하게 고쳐놓을 테니. 지금은 우리 애들 학교 보내야 해서 바빠서요.”
아랍어를 띄엄띄엄 알아듣는 나는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갸우뚱하는데, 제난이 갑자기 그를 와락 안으며 말했습니다.
“앗살라마 앗살라마(진정하세요).”
제난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아버지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상황에 그만 정신 줄을 놓아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어디서 오셨어요?” “우리 집에 한번 방문하세요”라고 진지하게 말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아버지…. 폭격 현장에는 아이들의 베개와 그릇 등 가재도구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굴러 다녔습니다. 그는 그날 폭격으로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둘과 아들 한 명을 전부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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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훗날 한국의 정신과 전문의에게 이 아버지의 사례를 물어보았습니다. 의사의 설명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인 충격이 가해지면 그 사람은 즉시 미칩니다. 눈앞에 벌어진 광경이 꿈이길 바라거나 부정하게 되어 뇌가 자동적으로 피난을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저렇게도 미치는구나. 나는 전쟁을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상상치 못했던 전쟁의 참상이 눈앞에 펼쳐지자 나도 감당이 안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내가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