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소설을 매우 좋아한다. <애니가 돌아왔다>를 읽게 된 계기도 영국의 주요 언론들이 그녀를 ‘여자 스티븐 킹’으로 확정(?)한다는 문구였다.
<애니가 돌아왔다>는 경찰이 처참한 살인사건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집으로 이사 오는 한 남자. 그 남자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 집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을 어렸을 때 겪었다. 그리고 그것을 트라우마로 평생 안고 살아왔다. 그리고 어렸을 때 자신이 겪은 일이 또 다시 일어난다는 미스터리한 이메일을 받고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려낸다. 죽은 자가 살아 돌아왔다. 또 다시...
“나는 똑같은 눈사람은 절대 만들 수 없는 것에 대해, 아빠의 친구가 복사한 비디오테이프는 항상 화면이 부옇고 정상적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세상의 어떤 것들-아름답고 오나벽한 것들-은 다시 만들면 반드시 망가지게 되어 있다.”
돌아온 것은 과연 죽은 자가 살아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죽은자의 썩어가는 육신을 뒤집어 쓴 또 다른 존재일까?
폐광 속 저주받은 비밀의 장소. 죽은자가 되살아오는 저주받은 동굴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소름끼치게 공포스럽다. 오싹한 기분으로 마을의 전설을 따라가다 보면 등줄기의 땀이 식고 어느새 나 또한 어두컴컴한 폐광에서 헤메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흡인력은 청소년 시절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아이들의 비행. 때로는 어른들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잔인한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 전두엽이 미처 성숙하기 전에 벌이는 치기어린 장난이 몰고 온 파국 등. 호기심 많고, 미숙하고 이기적이고, 겁이 없는 청소년들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
누구나 어렸을 때를 뒤돌아보면 아름다운 시절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도 자다가 이불을 걷어차고 싶은 일도 있고, ‘내가 정말 미쳤지’ 싶은 날도 있으며, 아련하게 아름답고 그리운 날도 있을 것이다. 고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립기도 하지만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아련하게 슬픈 기억도 있는 장소.... 저자는 그러한 요소들을 공포라는 요소와 버무려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에필로그의 공포스런 분위기도 책을 덮는 등줄기를 서늘하게 한다. ‘다음은 네 차례야’. 공포물의 흔하고도 효과적인 여운.
작가의 전작이 <초크맨>이라는 소설이라고 한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읽어봐야겠다. 아직. ‘여자 스티븐 킹’이라고 불리기에는 아직 부족할 지도 모른다. 이번이 겨우 두 번째 책이라고 했으니. 그렇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C.J. 튜더라는 이름을 기억해두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