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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

[도서] 새벽의 방문자들

장류진,하유지,정지향,박민정,김현,김현진 공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얼마전 대학동기 여자 친구 셋이서 만나 맥주 한잔을 했다.

셋은 대학시절 학교에서 '전통' 또는 '재미' 또는 '관행'으로 행해졌던 많은 일과 많은 말들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성희롱'에 가까웠는지를 이제야 깨달았다고

입을 모아 고백했다.

당시에는 남자 선배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어른(대학생)들은 이렇게 말하는 구나.', '대학문화란게 이런거구나', '저런 게 풍자인가' , '저게 성을 솔직하고 대담하게 표현한다 건가'하면서 어색하게 웃으며 넘어갔다. 그 문화에 흡수 되려고만 했지 그 것의 문제점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미투 운동이 등장하고, 젠더감수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페미니스트 담론이 나오면서

각자 자신이 대학 때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보게 되었다고, 그리고 얼마나 무지하고 순진했었나 오싹함을 느꼈다고.

그런 식이다.  사십대 중반인 나와 친구들의 젠더 감수성은, 저 멀리 물결의 움직임에 의해  한참 전에 생겼지만 이제야 발치를 철썩 때리고 귀여운 포말을 남기고 물러가는 파도처럼, 너무 늦게 도착한 소식이고 깨달음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보다 더 어린 여성들이라고 해서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한 거 아닌가....하고 마음이 아파졌다. 아니, 동틀 무렵이 가장 어둡다고, 조금이라도 변화하려는 세상이 두려워하는 세력들에 의해 더욱 힘들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이런 사람들이 나온다. 여전히 성을 사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남자들, 여성이라면 일단 아래로 보는 (그래서 일단 반 말부터 하고 보고, 뭐라도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들, 어린 여성의 성을 착취하려고만 하는 남자들, 여전히 만연한 학교  선생들의 성희롱, 공정한 척 하면서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잇속만 차리려는 남자들.....

아니, 남자들이 아니라 세상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세상에서 사는 책 속 여성들은 남성들의 성의식을 미러링하고 폭로하면서 힘겹게 싸우고 있다. 싸우면서 싸우면서, 힘겹에 앞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테마소설 페미니즘'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있는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남성 작가의 작품이다. 김현 작가의 '유미의 기분'을 읽으면서, 나는 지난 지 삼십년도 더 된 학교 생활을 떠올렸다. 그랬지, 여 학생들의 팔 안쪽만 꼬집는 변태 선생이 있었지. 수업 시간에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 선생의 더운 손길 정말 소름끼쳤는데. 꼭 속삭이듯 귀에다가 바람 불며 이야기하는 선생도 있었고.....

최근 TV 뉴스에서 하루다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스쿨미투를 보며 암담함도 느꼈었고.

이 땅의 다른 '유미'들 중에서도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를 들은 이가 있을까. 그 말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고 건강을 회복한 이들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가해자들 중 대다수는 '사과할 자격도 없는 인간'인 것이 아닐까.

 

 

 

221쪽에 나온 이 말이 특히 좋았다. 누구는 '미안하다'고 하면 상대방이 나를 우습게 볼까봐, 만만하게 볼까봐 사과를 안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 사과를 할 자격을 잃어버리지 않는 인간이야말로 만만하지 않고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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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책을 읽으면서 왠지 혼자 더웠다 등골이 서늘했다.

누군가는 '페미니즘'이 유행일 뿐이며, 이제 미투는 너무 자주 들려서 지겹다고도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아직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이제 서두를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사과할 자격을 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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