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가 추워지면 항상 생각한다.
어디 따뜻한 나라에 가서 한 달만 살고 왔음 좋겠다.
조금씩 서늘해지는 깊은 가을,
보라보라에서 살던 이야기를 엮었다는 에세이집에 눈이 갔다.

확실치도 않은 기억이 언뜻 떠오를 뿐
전혀 알 지 못하는 섬이었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니. 그것도 외국인과 결혼해서...
책을 읽다가 구글지도를 켜고 BoraBora라고 입력해보았다.
짙푸른 코발트색 바탕에 연민트색 환초띠를 두른 물체가 화면을 채웠다.
도대체 이게 어디 있다는 걸까.
스크롤로 화면을 밖으로 빼고 빼고...결국은 지구의 둥근 선이 나타날 때까지 빼 봤지만 잘 알 수 없었다.
이리저리 지도를 움직여보니 호주 오른쪽, 막막한 태평양 한가운데 아주 작은 섬인 것 같았다.
그것도 그저 짐작일 뿐. 지도를 보았지만 여전히 막막한 그곳. 보라보라섬.
그래서 현실에 없는 환상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책에는 그녀가 왜 한국을 떠나 그 먼 섬까지 갔는지
어떻게 지금의 남편과 만났는지 등에 대한 사연(또는 설명)이 없다.
그저 실린 글들의 행간의 읽으며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보라보라에서의 일상은 바쁘지 않은 것 같았다.
두꺼운 천을 펴고 책을 읽고 인터넷으로 넷플릭스를 보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패들보드를 타고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하고....
몇 안되는 주위 사람들과 깊이 사귀고.............
그러나 그곳도 지상낙원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다.
섬나라답게 공과금은 비싸고
모기가 기승을 부리고
모기에 물려 열병에 걸리기도 하며
갑자기 정전이 되기도 하고
가계가 망하기도 하고
마트엔 물건이 없고
라디오를 훔쳐가는 놈도 있고
그래도 작가는 말한다.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무서운 말이기도 하고 위로가 되는 말이기도 하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 오늘을 반납하고
살아갈 때가 많은 것 같다.
나는...
그녀는 불확실한 내일을 걱정하기 보다
오늘의 확실한 행복을 그러잡는다.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지.
...
책에는 보라보라섬 이야기 뿐 아니라남편, 가족과 주변 사람들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징그럽게 애틋하고, 밉기도 하고
울컥한 마음을 들게 하는 가족.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여전히 가장 강렬한 감정을 품게 하는 가족...
런던, 파리, 프로방스, 밀라노, 코펜하겐...
그 동안 책으로 읽은 많은 곳에 가 닿고 싶었다.
보라보라도 그렇다.
우리끼리만 아는 농담을 하며
시시덕거릴 수 있는 사람과
딱 한 달만 살다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