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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도서]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대학 시절, 명절 무렵 과사무실에 앉아 있을라치면 선후배나 친구들이 물어왔다.

"언제 내려가냐?"

몇 번이나 고향 및 거주지가 서울이라고 말해도 질문은 번번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안보였나보다. 관심이 없었든지.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서울 바깥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중심가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서울 안에서만 살았다. 남편도 그렇다 .남편의 은퇴가 얼마 안남았지만 귀향이나 귀농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빼박 도시 사람이다. 내게는 뚜렷이 의식하지는 못해도 도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가 항상 내게 공기와 같은 환경이었기에 오히려 도시라는 공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김진애의 도시이야기>의 저자 김진애 작가는 도시건축가다. 서울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고, MIT에선 도시계획박사가 되었다. 40대엔 <타임>지가 선정한 '차세대 리더 100인'에 이름을 올렸고, 18대 국회의원으로, <김어준의 뉴스공장> , <알쓸신잡3> 등에 출연하여 도시와 공간에 대해 말하는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일년에 한 번꼴로 책을 내는 저자가 이번에 낸 책은 '도시 이야기'다. 이전에 낸 책을 고쳐서 최근에 낸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우리 도시 예찬: 그 동네 그 거리의 매력을 찾아서>와 함께 '도시 3부작'이 된다고 한다.

 

이 책의 부제는 '12가지 '도시적' 콘셉트'다. 작가가 생각하는 12가지 도시적 콘셉트는 무엇일까? 익명성/ 권력과 권위/ 기억과 기록/ 알므로 예찬/ 대비로 통찰/ 스토리텔링/ 코딩과 디코딩/ 욕망과 탐욕/ 부패에의 유혹/ 이상해하는 능력/ '돈'과 '표'/ 진화와 돌연변이 등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은 독자들에게 아래와 같은 기대를 품기 때문이다.

 

현상 뒤에 있는 구조를 읽는 시각이 생기고, 현상의 현란한 자태에 덜 속게 되며, 본질적인 변화에 대한 바람을 키우고, 그 바람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더 잘 가다듬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23쪽)

작가가 목차만 보면 어려워보이지만, 내용은 술술 읽힌다. 도시가 익명성의 공간이라는 것,

 

권력과 권위를 나타내는 각종 관공서가 몰려 있는 곳이라는 곳, 기억과 기록의 이름으로 다양한 건축물들이 보전되고 보존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알면 알수록 찬양하게 되고, 다른 나라나 다른 도시에 가 봄으로써 우리것을 통찰하게 되며, 아름답거나 슬프고 부끄러운 역사까지 하나가 되어 스토리텔링을 하는 곳이 도시다.

 

도시 속 여러 공간에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기호를 입히기도 하고 그것을 읽어내기도 하며, 욕망의 공간이며 그것이 부푼 탐욕의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부정 부패의 유혹도 끊이지 않는다. 도시를 이방인의 시각으로 낯설게 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또한 필요하다. 지금까지 '돈'과 '표'는 도시를 만들고 운영하는 힘이었다. 그것은 날로 심해지는 양극화를 불러왔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돌연변이처럼 보이는 작은 변화가 결국 진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작은 변화부터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도시란 모르는 사람들과 사는 공간'이다. 즉 '익명성'은 도시의 가장 근본적 속성이다. 그렇다면 도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딱 하나만 꼽는다면 '길'이다.(31쪽)

 

광장은 확실히 우리를 매혹한다....미로같이 좁은 길이나 일상적인 가로와 완전히 다른 스케일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질 때 우리는 해방감을 맛보고 비루한 일상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리는 느낌을 받는다.(44쪽

광장은 도시의 익명성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공간이다. 서로 아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잠시 믿게 된다는 뜻에서다. 익명의 우리는 서로 모르고 경계하고 또는 의심하기까지 하는 관계일지 모르지만, 광장에 있는 이 시간 만큼은 잠깐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의식한다. (50쪽)

청와대에 대한 문제 제기가 흥미로웠다. 현재의 청와대는 노태우대통령의 설계로 대통령과 비서진의 업무공간이 너무 멀찌기 떨어져있는 구중궁궐이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날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이 오리무중인 것도, 이러한 공간적 문제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 백악관의 미국 대통령집무실 오벌오피스가 우리나라 대통령 집무실의 절반 밖에 안된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청와대는 앞으로 좀더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국회에 대한 지적도 날카롭다. 저자는 지금의 국회 건물이 건축적으로 흉물이라고 생각한단다. 국회회의장은 잘 만들어져있지만 겉 모습은 권력의 강요로 기형적인 모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돔'은 통합을, '열주'는 민주를 상징한다고 박정희 정권은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여하튼 세계의 의회 건물들 대다수가 열주와 돔이라는 건축 어휘를 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회 층수를 높이고 돔을 더 크게 하라!"는 정치권의 주문이 끊이지 않았고, 그러다가 여희도 국회는 어색한 비례에 몸집만 큰 건물이 되어버렸다. (85)

 

요즘 서울에서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적인 공간의 보존과 보전, 복원 문제에 대해서도 확실히 개념을 잡고, 다시 한 번 그것이 왜 필요한지,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


왜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가? 원전히 담고 있는 힘과 시간을 견뎌낸 힘을 계속 느끼고 싶기 대문이다(석물, 조형물, 건축물 등). 왜 '보전'하는가? 앞으로도 계속 남아서 시간이 지나더라도 진화하고 익어가면서 원래 분위기 그대로 우리 옆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동네 보전, 도시 공간 보전, 생가나 역사적 공간의 문화 공간화 등). 왜 사라진 실체를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가? 잃어버린 것이 너무 아깝고, 사라져버린 것을 이 시간에 다시 체험하고 싶기 때문이다(궁궐, 사찰, 서원, 성곽, 무덤 등)(105)

 

지금 이 시대의 공간과 다른 그 어떤 공간을 만나면, 그윽해진다.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라, 오래되어서, 언제나 거기있을 것 같아서 시간을 초월한 믿음을 갖게 된다. 나는 얼마 후 없어지더라도 이곳은 남아 있으리라는, 어떤 안도감마저 느껴진다.(105)

 

빈티지란 '고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떤 에센스를 안고 있는 그 어떤 것을 뜻한다.(118)

 

한 인간이 사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이 기억과 기록은 씨앗이 된다. 기록은 기억의 단초가 되고, 기억은 이야기의 원천이 된다. 기록이 풍부할수록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라 여럿이 또는 동시대인이 같이 공유하는 집합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시간을 뛰어넘는 집합 기억으로 이어진다. 도시는 온전히 그러한 집합 기억의 풍요로운 저장소다.

(120)


전세계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작가에게 사람들은 묻는다고 한다. '어느 도시가 가장 좋은가요?"

그녀는 대답한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이지요".

완벽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모자람이 많아보여도 살고 있는 도시를 가장 좋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

이것이 해외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진정한 배움이라는 것이다. 창덕궁 주합루나 비무장지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작가가 얼마나 우리나라의 공간을 아끼고 사랑하는지가 느껴진다. 

 

재미있게 본 내용 중 하나는 환경 도시로 유명한 프라이부르크의 '슈톨퍼슈타인' 이야기다. 슈톨퍼슈타인은 걸림돌이라는 뜻. 가로세로 10센티미터의 작은 황동판에, 나치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추방연도나 사망연도 등이 적혀있는 것이다. 전 유럽에 7만 여개가 있다고 한다. 과거의 잘못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유럽 사람들의 각오가 그 '걸림돌'에서 결연하게 느껴진다. 당연히 이 대목에서 역사를 부정하는 뻔뻔한 아*씨가 생각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내 시선을 끌었던 내용은 "콘셉트 8. 욕망과 탐욕: 나도 머니 게임의 공범인가?" 라는 장이었다. 나도 머니게임의 공범인 것 같아서.

 

이 장의 부제는 '아파트 공화국`단지 공화국'이다.

 

김진애 작가는 아파트의 아쉬운 점을 조목조목 나열하면서도 '아파트가 아니라 단지 문화가 문제다'라고 단언한다.

'단지 공화국'이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쓴 사람은 건축학자 박인석 교수다. 그는 자신의 책 <아파트 한국사회: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에서 아파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단지, 특히 대규모 단지를 만드는 경제 구조와 주택 유통 구조가 문제라는 논지를 조목조목 펼쳐냈다.(215)

 

아파트 단지 선호현상은 개인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더 유효하다. 이웃끼리 알고 지내는 공동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서로 어떤 사람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끼리끼리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작용하는 것이다. 비슷한 평형끼리 모아놓은 것도, 한 동에 대개 같은 평수를 모아놓은 것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220)


작가가 생각하는 아파트 '단지 문화'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길이 없어진다.  골목길은 사라지고 아파트를 에워싼 큰 도로만 생긴다.

2. 스트리트 라이프가 사라진다.  골목 경제가 줄어들고 동네 일자리가 줄어든다.

3. 오직 주거라는 단일 용도다. 따라서 변화에 대응하는 융통성이 부족해진다.

4. 한 번 대단지 개발이 일어나면 그 파급력이 워낙 커서 전세가 폭등 등 시장을 교란한다.

5. 사는 집의 계급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브랜드냐, 소유냐 임대냐, 몇 평이냐, 어느 동이냐에 따라 고스란히 드러난다.

6. 획일적이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서 대단지 개발이 아닌 소규모 개발과 주거와 상업 기능이 섞여 있는 가로형 아파트를 제안한다.

김진애 작가가 도시형 아파트라고도 부르고 있는 가로형 아파트란 길을 따라 들어서는 아파트다. 길을 많이 만들고, 소규모로 성처럼 담장을 치는 대신 길에서 바로 건물로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를 만들자는 것이다. 파리 등 유럽의 도시의 아파트들이 이런 형태라고 한다. 이러한 가로형 아파트에는 한 건물에 여러가지 주택 유형을 섞어놓는다는 구상이다. 큰집, 작은 집, 자기 집, 전셋집, 월셋집, 공공셋집등. 서로의 냄새를 맡게 하는 것. 아파트 단지에 담장을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우 이상적인데, 내 머릿속엔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무리짓고, 차별지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이것은 매우 이루어지기 어려운 플랜 같다. 사람들이 기피할 것이고, '사업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미명아래 아무도 하려 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바람직해도 잇권이 발생하지 않는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을테니까.

 

반대로 아무리 말도 안되는 플랜이라도 잇권과 탐욕, 부정 부패가 결합된다면 우여곡절을 겪어도 결국은 실현되고 만다. 김진애 작가가 이 책에도 언급한 엘시티 이야기다.

작가는 초고층 빌딩 이야기를 하며 엘시티의 10가지 특혜와 반칙을 조목조목 따졌다. 초고층빌딩은 건축법 상으로는 50층 이상 200미터 이상의 건물을 초고층 건물이라고 한다. 2000년에는 20개였던 전국의 초고층 건물은 2018년에는 2325개까지 늘었다. (와!!! 몰랐다.)

 

엘시티에 관련된 의혹을 보니, 최근 부산이 조정지역에서 풀리면서 얼마나 엘시티를 사고 싶어했는지가 떠올랐다. 예전에 TV시사 고발프로그램에도 나왔었는데, 보고도 잊고 있었나보다. 다시 읽어보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렇게 부패덩어리의 상품을 사고 싶어하는 마음조차 죄 스러워졌다.

 

건축박사 김진애는 초고층 건물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데 반대한다. 작가는 초고층 건물이 주거용으로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주거로서의 초고층이라면 저자는 이러한 질문을 한다고 한다. 1. 창문을 열 수 있는가 2. 발코니에 나갈 수 있는가 3. 소방 사다리가 닿는 높이인가(소방 사다리는 일반적으로 22층까지 닿는다.). 개인적으로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없는 곳은 주거용으로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단다. 작가는 "초고층 거주의 불건강함이나 심리적 불안정성에 대한 연구들은 이미 상당히 쌓여 있다"고 말한다.

고립감, 소외감, 땅과의 거리가 멀수록 생기는 건강관리 문제, 자연 환기가 안 되면서 쌓이는 건강 문제 등 머무는 시간이 긴 집의 환경에 대해서는 각별히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기본적인 상식이다.(251)

 

초고층 건물에 아파트를 넣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잘 팔리고 비싸게 팔리는 분양 사업이기 때문이다. 임대 사업인 업무 시설과 유통 상가는 투자비 회수가 장기화되는 반면, 아파트는 분양, 그것도 선분양이니 투자 비용 뽑기에 그만이다. 초고층 프리미엄까지 붙으니 공급자로서는 충분히 선호할 만 하다.(250)


작가가 반대하는 것은 초고층 그 자체가 아니다. 적당한 곳에 어울리는 기능을 담아 튼튼하게 지으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초고층은 장점도 많지만 건축비가 많이 들고 관리 비용도 많이 들며 빌딩 사이에 바람도 세게 부는 등 문제점들이 있다. 그래서 초고층은 짓기는 짓되, 아껴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재개발 재건축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작가는 왜 건물을 자꾸 허물고 다시 지으려고 하는 지에 대한 대답도 내어놓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사회의식이나 문하가 바뀌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큰 개발 차익을 고대로 인정하는 제도가 존속하는 한 개발 차익을 얻으려는 세력은 부단히 갖은 꾀를 낼 테니 말이다. 서구 도시에서 오래된 건물을 고쳐서 쓰는 이유도 그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서아가 아니라 새로 짓기보다 고쳐 쓰는 편이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273)

 

'도시 속 양극화' 역시 심각하다. 재개발, 재건축, 초고층, 주상복합 개발이 이제는 단순히 주택 공급의 목적이 아니라 부가가치 높은 부동산 상품을 획득하는 수단이 되었다. 값비싸고 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아파트를 감당할 수 있는 고소득층과 자산 보유층이 증가하는 현실도 현실이려니와 잘나가는 도시의 도심 개발에서 한몫을 챙기려는 투자 또는 투기 행위가 이 현상을 부추긴다.(283)


이런 문제들이 보인다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자꾸 문제제기를 할 때 우리의 도시는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상하게 여기는 시각은 아주 특별한 능력이다. 인지하고 식별하는 능력이고, 더 나아가 바꾸고 개선하는 역량이다. 일상을 너무도 당연해하는 것,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것, 그저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쓰거나 갖은 꾀를 부리는 것으로는 절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274)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한다.

돌연변이의 출현으로 진화하는 도시.

달동네처럼 자생적으로 발생하고 발전하는 도시.

도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원칙만 세워놓은 채로 하나하나 채워지고 완성되는 도시를 만들어 가자고.

 

작가가 생각하는 도시는 돈과 표가 사는 도시가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삶의 도시다.

 

나도 그런 도시에 살고 싶다.

 

매일 부동산으로서의 도시 공간만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인문적인 시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기회가 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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