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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도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버 저/이한우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1930년대 발간된 책이니까 무려 80년도 더 된 책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으로 세계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잔뜩 드리운 시기였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많은 나라들이 아직까지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고, 한국도 그 중 하나였다. 왜 가장 빨리 근대화된 국가인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들이 자유, 평등, 박애라는 혁명정신에도 불구하고 약소국을 침범하여 식민지화 했을까? 선한 마음이 있던 정치가와 철학자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과연 이에 동조했을까? 개인의 선함은 왜 집단 이기주의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걸까? 이런 복잡다단한 현상들을 풀어낸 책인데,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개인 차원에서의 선의지와 이타적 행위는 비교적 그 실현 가능성이 높지만, 커다란 집단이나 국가에서는 도덕적 행위를 기대할 수 없으며 오로지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것이다. 

 

이는 실제로 여러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재벌이나 정치인이나 언론사의 구성원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다 예의 바르고 선량한 사람들이더라고 말한다. 그런데 뭉쳐 집단을 이루면 자기들 이익에만 골몰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책의 배경이 된 시대를 보자면, 제국주의로 약소국을 침범했던 나라들은 저마다 자신의 지배가 식민지국가를 개량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식민지배하에 있던 나라가 능력만 된다면 자신들은 손을 뗄 것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사실은 오로지 침략집단의 이익을 위한 선택 외에는 그 어떤 목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는 교묘하고 선동적인 말로 주변을 속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개인과 집단에서 도덕성의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진화론에 대입해서 생각해보자. 인간은 오래 전부터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지만, 언어를 발명하기 전에는 기껏해야 몇 명의 친족에 불과했다.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이 극적으로 확대된 후에도 150명 정도의 집단이 가장 효율적인 크기였다. 진화론적으로 인간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한다. 개인이 이타성을 발휘하는 이유는 내 유전자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다. 내 자녀는 50%의 유전자가 나와 일치한다. 확률적으로 내 아이 두 명의 이익을 위해서는 나를 희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내 사촌으로 치면 네명이고, 그렇게 촌수가 늘어날수록 확률이 줄어들긴 하지만, 어쨌든 가까운 집단 내에서는 자신의 이타성을 발휘할 토대가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집단간의 사이에서는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는다. 따라서 집단 내에서 자신의 이타성은 자신의 유전자의 확장에 유리하지만, 집단간에는 상대방에게 이타성을 발휘하는 것이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집단적 행동의 발현이 이런 방식으로 의식적으로 나타나지는 않겠으나, 결과를 설명하는 데는 그럴 듯 하다. 그럼 거대 집단인 국가 내에서 개인의 희생인 애국심은 어떻게 설명할까? 원시 이후 600만년의 인류 역사에 비하면 국가라는 거대단체가 생겨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진화가 사회의 현상을 따라가기에는 사회가 너무 급격히 변해왔다. 따라서 국가라는 새로운 집단 내 애국심은 씨족사회에서의 자기 희생의 '부산물'정도로 보면 되겠다. 

 

마르크스는 민주주의를 특권계급의 지배수단에 불과하다고 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민주주의 말고 다른 대안이 없는 듯하다. 폭력혁명만이 무산계급이 빼앗긴 권리를 찾아서 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극단적인 의견에 동의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주의 관점에 따르면, 결국 노동자 계급은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고 혁명으로 세계를 전복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상 경제성장과 기술의 발달로 노동자 가운데 일부는 더 높은 소득과 윤택한 삶을 보장받기도 한다.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배계급은 최소한의 복지를 마련해 타협하기도 한다. 어쨌든 자본주의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파이를 키웠고, 민주주의는 파이를 나눌 수 있도록 해줬다. 이미 인류는 경제적 풍요가 주는 혜택과 평화가 주는 안락을 경험했다. 집단의 비도덕성이 고정된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대 집단에서의 비도덕성을 인류가 정확히 인식했다면, 그에 대한 해답도 분명히 발견해 내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이제는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기에는 그 위험이 너무 커져버렸다. 아무리 초강대국이라도 인류가 공멸한다면 거기서 예외는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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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초보

    국가나 집단에서 도덕적 행위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동일화 현상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르크스의 혁명은 이제 불가능하죠. 정권과 재벌, 그리고 종교, 언론, 국가는 물론 제국까지 연합이 되어 있으니까요...

    2016.03.02 07:22 댓글쓰기
    • 짱가

      민주적인 해결이 그냥 다수결이라기 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2016.03.10 22:29
  • 파워블로그 파란하루키

    윤리교육학 전공이라 대학교 때부터 참 많이 들어온 이름인데 언제 한 번 읽고 싶다 했던 게 아직도 손을 못 대고 있는 책입니다. ㅠ_ㅠ... 제목이라도 반가운 마음에 댓글 달아요.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라는 책이 생각나요~ 사례 중심이라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과 비슷한 지점이 있을 듯해요~

    2016.03.02 20:59 댓글쓰기
    • 짱가

      아,, 저는 너무 어렵게 읽었어요. 특히 초반에는 거의 포기하고 싶을정도로요. 근데, 중반을 좀 넘어가면 읽을만해지더라구요. 좀 쉽게 쓸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아요

      2016.03.10 22:31
  • 파워블로그 꼼쥐

    개인의 선의지와 이타적 행위는 그야말로 본능에 가까운데 집단이나 국가 차원에서는 전혀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면서도 왜 그럴까? 생각하지 못했네요. 집단지성도 무색해지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지 책의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2016.03.11 18:17 댓글쓰기
    • 짱가

      집단 내에서는 집단지성이 효과를 발휘해도 집단 간에서는 아직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016.03.1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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