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나는 이 책이 ‘경제학의 배신’이나, ‘긍정의 배신’처럼 과학에 대한 맹신이나 웃자란 과학적 합리주의의 위험성을 가열차게 비판하는 종류의 책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책날개와 목차를 보니, 위트와 재미에 더하여 지적 욕구도 적절히 채워주는 그런 책이란 걸 알게 됐다. 책을 좋아하기로 소문난 빌게이츠까지 여름휴가에 읽을 책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물리학이나 천문학의 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도 읽을 수는 있지만, 중간중간의 디테일한 이해는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전체를 읽어나가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지만, 저자가 과거 NASA에서 로봇공학자로 일했던 만큼 과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부분도 있다.
인상 깊었던 내용 한가지만 적어본다.
인간의 자가수정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예를 들어서 여성이 자신의 줄기세포로 만든 정자로 임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물음에 저자가 답한 내용이다. 좀 더 나아가면 근친교배의 이야기와도 연결된 논의인 것을 알 수 있다. 근친교배는 유전적 질병을 유발한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그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설명한다.
인간이 만들어지려면 두세트의 DNA가 합쳐져야 한다. DNA안에는 23개의 염색체가 있는데, 간단히 말해 이 염색체가 각각 인간의 특질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힘, 건강, 지혜, 지능, 카리스마, 성별 등의 특성이 각기 남자와 여자의 염색체를 무작위로 하나씩 받아서 결정된다. 엄마에게서 10의 지능과 아빠에게서 15의 지능을 받았을 때, 그 지능은 15가 된다. (양쪽에서 다른 수준의 능력치를 받았을 때 발현되는 법칙은 더 큰 능력치가 반영된다고 가정)
만약에 5번 염색체가 비정상적일 경우 유전병이 발생하고, 남성과 여성에게 받은 염색체 두개가 모두 비정상적일 때 병이 발현한다면, 근친교배를 했을 경우에 유전적 질병이 발생할 확률이 훨씬 높아지게 된다는 거다. 자신의 염색체가 비정상이고 상대방의 염색체가 정상이면 발현되는 특성은 정상이 되기 때문에 자신과 염색체의 조합이 다를 확률이 높은 상대방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거다. 유전적 질병뿐 아니라 많은 특질들이 다양한 유전자 조합을 선호하는 이유다.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음)
자가수정을 한 경우에는 근친교배 계수가 0.5에 이른다는데, 이는 3대에 걸쳐 계속 형제자매 간에 결혼했을 경우에 나오는 수치란다. 이 경우 평균적으로 10살이 되었을 때 아이큐는 22퍼센트가 낮고, 키는 10센티미터가 작다. 태아가 살아서 태어나지 못할 확률도 아주 높다니, 근친교배가 문화적, 전통적 터부인줄 알았는데, 여기에도 과학이 있었다니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