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이자 내용이기도 한 ‘친정가는 길’은 교조적인 성리학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던 조선시대 중-후반의 반보기라는 풍속을 의미해요. 반보기는 8월 추석 이후 농한기에 여성들이 일가친척이나 친정집 가족들과 양쪽 집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 회포를 푸는 풍속으로 이 책에서처럼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의 만남이 기원으로 그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반보기가 존재한다고 해요. 지역에 따라 중로보기(中路-), 중로상봉(中路相逢) 같은 한자식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용어에서 짐작되듯 당일치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거리가 멀 경우 부득이 양쪽 집의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가 다시 그날 안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독특하면서도 현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애틋한 풍속이네요.
변소가 방 가까이에 위치하는 것이 대세인 요즘으로 볼 때 어처구니가 없는 “처가와 변소는 멀어야 좋다.”라는 속담으로 보듯이 남녀를 불문하고 사돈 간의 교류가 거의 없던 조선시대의 부계 중심의 사회에서는 상호 방문 혹은 왕래는 거의 불가능하였고, 또한 여성의 외출이 금기시되었던 전통사회에서 며느리의 외출은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해요.
이 책은 조선 후기인 1800년대 초반 평안도와 황해도를 배경으로 흔치 않은 기회로 친정 방문을 허락받은 주인공 ‘송심’과 한자를 막힘없이 읽고 쓰고 총명한 동서 ‘숙영’ 펼쳐지는 두 여성의 연대기라 하겠어요. 시집에서 아무 소리 못하는 ‘송심’ 앞에 연신 종종거리며 일하면 당당한 동서 ‘숙영’이 나타나면서 송심도 조금씩 달라지고 두 사람은 숨막히는 시집살이 속에서 서로 우정과 연대를 쌓아 가게 돼요. 그런데 서북에서 발생한 ‘홍경래의 난’을 맞아 남성 중심의 부조리한 가부장 사회에 맞서고 홍경래군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죠. 이 책은 총 2권으로 출간되는데 이 책은 홍경래의 봉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1권이 끝납니다.
사실 홍경래의 난이라고 하면 영화나 드라마의 사극 장르에서 중요한 소재로 쓰일만큼 우리에게는 익숙한 역사적 사건이죠. 제게는 당장 몇 년 전 방영되어 재미있게 보았던 <구르미 그린 달빛> 가 다루는 홍경래 난이 생각나네요. 이 책은 무엇보다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시집살이 했던 이야기와 너무 흡사해서 자꾸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네요. 왜곡되고 차별적인 가족관으로 저 시절 여성들이 큰 희생을 치렀죠.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읽어보면 좋을 재미있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만화였어요.
"본 서평은 부흥 까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199990)에 응하여 작성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