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계속 밀린다.
끝없이 밀린다. 경부에서야 어련히 밀리지만 경부를 벗어 나도 여전히 밀린다. 네비가 옆으로 빠지란다. 무주로. 빠진다. 적상을 지나 구천동을 지난다. 빼재를 넘겠구나. 넘을 일이 별로 없고 5, 6년에 한번 넘을까. 저쪽에서 넘어올 때 언제 한번 길을 잘못 들어 무풍, 설천으로 넘어오는 바람에 온통 무주일대를 헤멘 적도 있었지. 아마 27년 전에 처음으로 빼재를 넘었던가. 윽, 27년이 아니구나. 37년이구나. 빼재가 아닌가, 무풍, 신풍령을 넘었던가? 눈 덮인 덕유산이 강렬하게 다가왔던 그 날. 눈 덮힌 천상의 설원. 그렇지, 빼재를 마지막으로 넘은 지가 벌써 8년이 지났네. 그런가, 그때, 추석 다음다음날 홀로 택시로 빼재에 올랐던 기억, 빼재에서 대간을 따라 향적봉을 찍고 밤늦게 구천동으로 내려왔었는데, 온종일 홀로 산행하고 깜깜한 밤길을 내려오는데 희미한 그림자,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왜 그림자가 희미하게 생길까? 2006년 11월 늦은 가을에 새벽부터 큰봉우리 네개를 딛고 어두워져서 내려 오는데 무엇인가 희미하게 길이 보였다. 어딘가에 달이 떴을까? 아니면 생강나무 잎이 길을 비추는 걸까? 생강나무잎에 약간 의심이 가기도 한다. 그 옛날 어른들 얘기에 달없는 밤에 길을 헤메는데 무엇인가가 길을 비춰서 무사히 집으로 왔다는 얘기. 그렇게 마을에 와서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면 그때는 호랑이가 길을 비춰준다고 했다.
10여대가 줄을 섰다. 맨 앞차가 40키로로 가니 뒷차들도 꼼짝없이 40킬로다. 천불이 난다. 그래도 빼재를 오른다는 설렘으로 차들을 따라 가는데 아니, 터널이다. 이런 터널이 뚫렸구나. 언제? 터널을 지나 거창으로 접어 들었는데 예의 그 꼬부랑길은 없어지지 않았다. 앞차는 속도를 더 줄이고 천불은 머리끝까지 오른다. 난 공격적 운전자가 아닌데 이런 길에서는 왠지 모르겠다. 꼬부랑길 모서리 모서리에서 죽음의 추월을 한다. 맨 앞으로 나오고...뒤에 천불2가 따라 온다. 그것조차 멀찌감치 따돌린다. 그렇게 해서 마리까지 질주를 한다.
다시 인적없고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골짜기로 올라 선다. 다녔던 국민학교가 나온다. 페교된지가 25년은 되었지. 아마. 당시에 한 학년에 100명남짓 되었는데 80년대를 거치면서 순식간에 인원이 줄어들더니 분교로 바뀌고 곧바로 폐교되어 버렸다. 이미 오래전에 어느 교회에서 인수해서 요양원으로 쓰고 있다.
꿈인지 기억인지, 꿈이기도 하고 기억이기도 하고 10리길,학교 가는 길, 집에 가는 길이 하나하나 그려진다. 꿈에 매일 나오는 건지, 아니면 기억에 매일 그려지는 건지, 알 수는 없으나 그 길이 떠오르는데...
지금 차로 가는 길,
다르다. 이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다르다. 길 옆으로 나있는 냇물도 ...다르다. 분명히 어디 어디에 냇물이 있는데 , 냇물과 길이 만났다헤어졌다를 반복했다. 지금은 없다. 냇물운 저만치 들 가운데로 들어갔다. 길도 다르다. 언덕도 없다. 언덕의 흙이 깻묵을 닮아서 깻묵맛이 난다고 다들 한덩어리씩 들고 와서 먹다가 버린 그 언덕은 어디로 갔을까? 애장이 많아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혼자는 절대 못 지나갔던, 항상 꿈속에서 흉몽으로 발걸음을 붙잡았고, 진달래가 눈부시게 경사면을 좍 깔았던 그 골짜기는? 다 없다. 원래 없었던 건가? 그냥 꿈 속의 길이었을 뿐이었나?
'산천은 의구'하지 않다.
다 사라졌다.
그냥 꿈으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