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같은 시간에 같은 경로로 산책을 한다. 산책인지 운동인지 좀 애매한 처지다. 산책이라고 하기엔 좀 빠르고 운동이라고 하기엔 좀 느리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환경 변화에 예민하다. 사계절의 변화는 물론이고 계절내의 하루하루의 변화도 예민하게 느낀다. 그 변화들이, 피고 짐이 나에게 위로를 준다. 오늘은 무슨 꽃이 피고 졌는지, 풀섶에 메꽃 한 송이가 피어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라든지,
꽃들이 얼마나 피었는지, 어제 달려 있던 감 몇 개가 오늘은 없는 것이 누군가가 따 갔구나 하는 거라든지, 노랗게 잘 익은 모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데 역시 없어졌구나 하는 것이나, 후투티가 몇 마리가 언제는 어디에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어디에 앉아 있는지, 유기된 개가 새끼를 다섯마리 낳아서 몇 달을 데리고 다니다가 한 마리 한 마리 사라지더니 어느 날 어미와 함께 세 마리가 한 꺼번에 없어졌는데 누군가 입양해 간 일. 어느 날 낙엽이 모두 졌는데 미류나무(?) 높은 가지에 커다란 바구니만한 말법집이 드러났고 늦은 가을에 말 벌 몇마리가 날아다니는 게 보였는데 며칠 후 끝자락만 조금 남고 사라져 버렸다. 밑에 물을 뿌린 흔적이 있고... 높아서 쉽게 부술수는 없는데 바람에 날린 걸까? 119를 부른 걸까?
계절이 흐르고 겨울이 왔다. 다 떨어지고, 지고 앙상하다. 저수지가 예년보다도 빨리 얼었다. 저수지에서 놀던 수많은 오리, 기러기들이 어디론가 떠났다. 얼지 않는 남쪽으로 갔을까? 아니면 바다로 갔을까? 겨울은 새들의 계절인가. 물 위의 새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물밖의 새들은 바쁘다. 얼어붙고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추위와 먹거리에 온 생명을 거는 게 틀림없다. 바알간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감탕나무 열매, 먼나무 열매, 낙상홍 열매 등등이 비슷하게 생겼는데 모양으로 봐서는 낙상홍 열매로 보이는데 꽃은 또 달라 보인다. 저 쪽에 가로수처럼 심어놓은 나무는 먼나무가 틀림 없는 것 같다. 이 많은 열매가 다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그런데 11월이 지나고 12월이 저물어가니 다 사라지는게 아닌가. 이 많은 것들을 새들이 다 먹어 치운 것이다. 저쪽의 먼나무 열매도 그대로 있는 것 같더니 1, 2주 사이에 다 먹어 치우고 오늘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새들이 많이 먹어 치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