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과는 많이 반대스럽다. 모비딕은 장대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존재 향유고래를 좇아 끝없는 바다를 헤멘다. 고래를 향한 선장의 광기는 그 정도를 넘어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파멸, 죽음속으로 뛰어든다.
바틀비는 모비딕과는 정반대의 스케일을 가진다. 단편소설이고 월스트리트의 좁은 사무실 안이 배경이고 움직임조차 없다. 바틀비와 에이햅선장은 정반대의 인물이다. 그런데... 둘은 닮았다. 왜? 모를 일이다. 반대이기 때문에 닮은 것일까? 극의 극은 극이다. 뭐 이런 것인가? 에이햅은 앞으로 질주함으로 끝을 향하고 바틀비는 뒤로 감으로 처음으로 돌아간다. 두 끝은 한 점에서 만난다. 그래서 둘은 동일인이다. 궤변인가?
바틀비를 처음 읽으면 충격으로 다가온다. 동안거에서 큰 스님이 던진 화두처럼 뜬금없고 황당스럽다. 밑도끝도 없다. 그래서 뭐지? 뭐 어쩌라는거지? 카프카의 <변신>을 읽을 때와도 비슷하다.
"I would prefer not to."
바틀비가 던진 화두이다. 변호사 사무실, 변호사인 나와 직원 셋(칠면조와 닛빠와 생강빵)이 근무하는 곳에 어느 날 들어온 바틀비, 과거도 현재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인물이 'prefer not to'의 세계로 스스로 빠져든다. 나의 행위가 타인에 의해 규정되어지고 존재이유인 이 세상에서 '하고 싶지 않음' 과 '하지않음'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결국 '하지않음'은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고 사멸로 접어드는 길이다. 그래서 바틀비는 고집스럽게 사멸을 향해 간다. 그런가? 왜?
만약 바틀비가 내 안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나라면? 타인에 의해 규정되어지고 살아지는 것에 대한 저항이라면? 하지만 그것은 사멸을 향해 갈 뿐인데...
무슨 묵시록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폐허가 된 사원의 마지막기둥처럼, 그는 자신이 없었더라면 텅 비었을 방 한가운데에 아무말 없이 고독하게 서 있었다."
"Since he will not quit me, I must quit him."
"On errands of life, these letters speed to de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