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내 생일에 출간된 이 시집을 생일 기념으로 구입하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작년 내 생일을 기념으로 지난 달에 읽고 싶었는데, 캘리포니아는 작년 12월부터 한달 가까이 비가 오고 있어(그래서 비상 사태까지 선포되었다. 겨울 폭풍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전도 됐었고 인터넷도 며칠씩이나 안 됐다) 이래저래 모든 것들이 불안정했다.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고 돌발적인 변수들에 그때그때 대응해가며 즉흥적으로 버텨낸 한 달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이 생활에도 적응이 되어 새해가 되고 나서 늦게나마 이 시집을 보게 되었다.
이 시집의 띠지에는 세 명의 시인 혹은 문학평론가의 추천평이 들어가 있는데, '육박해 들어감', '과감함', '변주', '능청스러움과 냉정함' 등으로 최재원(최재원은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 혹은 그녀의 시에서 젠더 혹은 성 정체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의 시를 설명내지는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한 마디로 요약하는 법을 나는 알고 있다. 바로 이렇게 말하면 되는 것이다.
"혹시 「Love Me If You Dare」라는 영화 봤어? 거기 마리옹 꼬띠아르가 나오거든. 딱 그 영화에 나온 마리옹 꼬띠아르같은 시들이야."
「Love Me If You Dare」를 본 사람이라면, 이 한 마디로 이 시집의 분위기나 이미지를 단박에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1975년생인 마리옹 꼬띠아르가 2003년 작인 「Love Me If You Dare」에서 보여준 소피라는 인물, 그 인물을 문자화해서 시로 표현한다면, 최재원의 시들이 될 것이다.
역으로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 특히 표제작인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와 마지막에 수록된 「그대여」를 인격화해서 표현한다면, 「Love Me If You Dare」에서 마리옹 꼬띠아르가 분했던 소피가 될 것이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이 시집의 리뷰가 된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무언가를 덧붙인다면 사족이 되고 말 것이라고 여긴다.
이 시집에서 최재원이 펼쳐낸 다양하고 왕성한 시들(시집임에도 불구하고 200쪽이 넘는다. 이렇게 두꺼운 시집은 근래에 처음이다. 이 '왕성함'은 소피의 쉼없는 에너지와 열정과도 닮았다)은 모든 경계와 금기들을 전복하면서 자유롭게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Love Me If You Dare」의 원제는' Jeux D'Enfants'인데, 최재원의 시들도 전략적으로 '애들 장난'처럼 보이는 쪽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그 장난스러움이 그 어느 것보다 도발적이다.
「Love Me If You Dare」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이 영화의 결말이 파격적이라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테고, 그래서 그 영화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데, 아마 최재원의 시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20대의 마리옹 꼬띠아르를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듯이 말이다.
감히 말하건대, 당신이 감당할 수만 있다면, 가장 인상적인 사랑을 선사할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