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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쬐기

[도서] 햇볕 쬐기

조온윤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캘리포니아는 이번(이번이라고 해야 할지 지난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2022년 12월 이후를 가리키는 의미다. 이미 3월 중순이니 '지난'이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여전히 겨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이라고 쓴다) 겨울 내내 '윈터 스톰'이 어마어마했다.

지난 번 박정대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땐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LA에 38년만에 눈이,그것도 폭설이 내렸을 정도였다. 캘리포니아만 해도 남한의 일곱 배 정도의 면적인데, 남가주 북가주 할 거 없이 겨울 폭풍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2월 말부터 계속된 폭풍이 여전한데,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눈이었고 지금은 비라는 점이다. 홍수로 잠긴 마을을과 바람에 꺾인 거목들을 보면서 기후위기의 전초전을 보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내내 내리는 박정대 시인의 시집을 연일 퍼풋는 폭설 뉴스와 함께 했다면, 연일 계속되는 비 소식과 함께 조온윤의 시집을 읽었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이 시집의 제목이 '햇볕 쬐기'인데,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내게 가장 간절한 게 햇볕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이다.

이 시집의 1부엔 시집의 제목에 부합하는 시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시들에 더 몰입되고 그 시들이 더 와닿았던 건 이런 나의 사적인 경험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 또한 말하고 싶다.

같은 작품이라도 읽는 사람의 감정 상태나 환경, 나이 등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내가 이 시집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 시집의 1부에 배치된 시들에 즉각 반응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읽었을 땐 이것이 일종의 트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괄호.

 

이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와 그 이후의 배치된 시들은 사뭇 비슷하지만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 1부가 햇볕에 대해서라면 2부부터는 그림자, 밤, 꿈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시인이 의식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시인이 숨겨둔 것, 혹은 좀더 꼼꼼하게 읽어야 보이는 것들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1부는 정확히 시집의 제목과 부합하지만, 나는 어쩐지 2부부터가 시인의 진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번째로 이 시집을 읽을 때 가장 좋았던 건 「백야행」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의 소설의 시각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시이기도 한데, 이 시집이 가지는 상반된 이미지, 시인이 괄호속에 숨겨 놓은 시인의 마음이 비교적 명료하게 표현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가령,

 

낮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들/ 밤에는 돌아올까 밤에도/ 밤에도 불을 켣는 사람 같고

 

혹은

 

환한 빛에 관한일이라면 잘 알 수 있다/ 빛은 눈을 뜨게 하지만/ 눈을 멀게도 하지/ 빛은 눈을감게 하지만 손을 더듬어/ 다른 손을 찾게도 한다//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꿈에서는/ 그  손이 빛이었구나/ 그 빛을 잡아보려고 우리는 오래도 헤매었구나/ 강물 속에 빠져 있는 하얀 달을 건져내러/ 우리는 물가로/ 이불 속으로/ 첨벙거리는 잠 속으로

 

그러나 이것이 완전히 상반되는 이미지나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시인은 밤과 같은 시간에서 Secret Sunshine, 그러니까 密陽을 구하거나 찾는 것일테고, 

삶의 어느 한 순간(그것이 비록 찰나라 할지라도), '내가 버린 시간들이 쌓'(p.118)인 '수챗구멍'에서 그 빛을 발견했다고 볼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이 시집을 관통하는 것은 '구도求道'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의 한 달만에 비도 바람도 없는 날이다. 

이젠 정말 겨울이 끝난 걸까?

 

매일 빠짐없이 햇볕 쬐기

근면하고 성실하기

버스에 승차할 땐 기사님께 인사를하고

걸을 땐 벨을 누르지 않아도 열리는 마음이 되며

 

도무지 인간적이지 않은 감정으로

인간을 위할 줄도 아는 것

혹은

 

자기희생

거기까지 가닿을 순 없더라도

내가 믿는신이

넘어지는 나를 붙잡아줄 것처럼

눈 감고 길 걸어보기

헛디디게 되더라도

누구의 탓이라고도 생각 않기......

 

그런데

새벽에 비가 왔었나요?

 

눈을 떠보니 곁에는 낯선 사람들이 있고

겨드랑이가 따뜻했던 이유는

그들의 손이 거기 있었기 때문

 

- 조온윤, 「중심 잡기」 부분

 

이 시의 제목이 '햇볕 쬐기'가 아니라 '중심 잡기'인 이유, 그러나 시인이 이 시집의 제목은 '햇볕 쬐기'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무엇을 (먼저) 볼지는 독자의 선택이지만, 결국은 양쪽을 다봐야 시인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데, 시인이 내내 생각하는 것, 그의 마음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은 아마도 '密陽'(물론 이 역시 비유이다)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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