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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도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진은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10년만에 나온 진은영의 시집이다. 10년이란 강산도 변할 만큼 긴-세월인지라, 이 긴 시간동안 쓰여진 시들이 하나의 일관된 생각이나 사상, 감정들을 드러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질적인 것들을 패치워크한 것처럼, 다소 생경하고 낯선 감각을 느끼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건너온 지난 10년의 세월엔 세월호 참사라는 너무나 큰 경험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매우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참사의 경험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쳤겠지만,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활동가이기도 한 저자에게는 더욱 큰 무게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것은 일상을 파괴하거나 잠식하는 큰 사건으로서 시인의 삶을 지배했을 것이다. 시인은 시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그리고 사회참여적인 활동가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문학하는 사람은, 시인은, 큰 재난 앞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10년 동안 시인은 이 물음을 직면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그가 전투적으로 치열하게 산 삶의 결과물, 그가 이 질문에 응답한 결과물이 바로 이 시집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이 시집의 성격을 드러낸 가장 대표적인 시들은 「그날 이후」와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 혹은 「방을 위한 엘레지」나 「죽은 엄마가 아이에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의 두 편은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유예은 양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근거로 하고, 나중의 두 편은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인 권재근 씨와 혁규 군을 가족으로 둔 베트남인 판만차이와 그의 딸 판록한(혁규 군의 이모) 씨의 사연으로 쓰여진 시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들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그때의 충격과 고통을 고스란히 되살린다.

시인은 지난 10년 동안 이러한 일들을 해온 것이다. 그것이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활동가인 자신의 역할이자 사명이라 여겼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시인의 내면을 가장 잘 드러낸 시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말'에서 진은영이 기록했듯, 이 시집은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흘러간 지난 10년의 기록.

 

한편, 「청혼」 같은 시들은 그 자체로는 좋지만, 시집 전체의 맥락에선 다소 동떨어진 생뚱 맞은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데, 그것은 10년이란 긴 시간을 고려해 본다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아무리 한결같은 사람도 때로는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고, 인간이 10년을 한결 같은 감정 상태로 살 수는 없으니까), 달리 생각하면 시인이 죽은 자들의 삶을 대신 살아주고 대신 써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은이와 혁규가 살아보지 못한 미래를 대신 살아주며 쓰는 시라고 생각하면, 이질감이나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는 시집의 맨 마지막에 수록된 두 편의 시, 그러니까 「쓰지 않은 것들」과 「빨간 네잎클로버 들판」이 가장 진은영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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