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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싱크 하이웨이

[도서] 립싱크 하이웨이

박지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시인은 맨 처음엔 특징 기준에 따라 비슷한 성격들의 시들을 모아 시집을 만들다가, 지금과 같은 식으로 시들을 재배치했다는데, 이런 무작위적인 순서가 이 시집의 스타일과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이 시집은 한 단어로 규정지을 수 없다. 박지일이라는 시인 역시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 짓길 원하지 않는 듯하다. 마치 다양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시시때때로 그 인격을 드러내듯이, 여러가지 스타일과 문체들이 혼재되어 있다. 첫 시집이기에 가능한 패기 넘치는 모험심 내지는 다양한 시도라고도 볼 수 있겠고, 질서 없이 혼란스러운 한 개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여러모로 읽는 내내 시인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겨나는 시집이다.

일관된 문체 없이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문체를 구사한다거나, 기존의 문법을 파괴하고 스스로의 문장을 만드는 시도들은 시라는 형식을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치 다중인격인 것처럼 인격을 바꿔가며 혹은 여러 사람이 쓴 시들처럼 스타일이 확확 바뀌는 시들이, 시인으로서 시인이 치르는 전쟁(「세잔과 용석」을 참조할 것. 이 시집에 실린 시들엔 유독 사람의 이름들이 많이 실려 있다.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이 시인의 다른 인격처럼 보이기도 했다. 혹은 이 시집의 시들을 함께 쓴 또 다른 문체를 가진 사람이거나) 같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시도가 「이 내가 나는 정말 좋아」라는 동일한 제목을 가진 사진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원본 사진을 다양하게 변주해서 올린 사진 역시 한 인격의 다양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거니와, 시인의 의도가 개입된 사진 역시 문자로 지은 시와 마찬가지로 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시인의 의도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동명의 연작시 「사카린 프로젝트」와 문자로 된 표제시 「립싱크 하이웨이」와 사진이라는 이미지로 표현한 「Lip synchronization Highway(1992)」가 가장 박지일스러운 시들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문학과지성사에서 2021년에 선정한 시인들의 작품을 실은 『시 보다』에는 아래의  여섯 작품이 실렸다.

「큐브」, 「저기… 눈송이를 한 알씩 따서 바구니에 담고 있는 나의 앤에게」, 「휴일」, 「사카린 프로젝트」, 「머멀리거」, 「이바구」.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들 역시 시인의 대표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워낙 스타일이 다양한 시들이 실려 있는데다, 거의 200쪽에 육박하는 시집이어서, 당신이 읽고 어떤 시에 꽂힌다면, 그 시가 이 시인의 대표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열려 있고, 그만큼 방대하며, 그만큼 혼동스럽고, 그만큼 흔들린다.

 

김행숙 시인은 "그의 시는 상태가 아니라 동작이다."이다라고 평했는데, 시집을 읽다 보면, 이 평가를 정확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첫 시에서 시인이 명사에 '-하다'를 붙여 기존에 없던 동사를 만들고, 주격 조사나 목적격 조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시를 썼는데, 이 시를 시집의 처음에 배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를 추구하거나 특정한 목적에 의해 구성된 시집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유동하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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