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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도서]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저/최종철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Dear. 햄릿

 

얼마 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한 연극 『햄릿』 보았어요. 베니가 연기한 당신을 만난 셈이죠. 사실 당신을 보고 싶단 이유보다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는 배우를 보고 싶었던 겁니다. 어쨌든 연극을 보러 가기 전 오랜만에『햄릿』을 다시 읽었어요. 얼마나 오랫만이었나 하면그러니깐 그게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햄릿』을 읽은 게 중학교 1학년, 엄밀히 말하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기 전 2월이었으니 거의 30여년만입니다.

그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유령이 되어 나타난 당신의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지금도 꽤 명료합니다. ‘왜 아버지는 유령으로 나타나 아들에게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고 한 걸까?’ 어린 나이에도 그게 의문이었습니다. 가령 한국의 전래동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한 많은 귀신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보다 힘이 세고 지위가 높은 사람을 찾아가 원한을 갚아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아버지는, 심지어 그냥 평범한 남자도 아니고 덴마크라는 한 나라의 왕이었던 당신의 아버지는, 최고의 권력과 지위를 가졌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자신의 원한을 갚아달라고 말합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왜 하고 많은 사람들 중 아들에게 나타나 복수를 부탁했을까요? 원한을 갚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자신이 직접 복수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무리 유령이라지만 그래도 한때는 한 나라의 왕이었던 자인데.

 

이런 의문은 연극을 보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사실 햄릿’, 당신이라는 사람은 매우 감정의 진폭이 커요. 그러다보니 당신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 역시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다양한 감정들을 폭발하듯 분출합니다. 애통하고, 고뇌하고, 울분하고, 갈등하고, 좌절하고, 분노하죠. 오죽하면 옆에서 같이 연극을 관람하던 남편이 햄릿이 너무 많이 우는 거 아냐? 보는 나도 지친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지켜보는 사람이 진이 빠질 정도로 햄릿의 고통과 고뇌는 깊습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점점 더 의문에 빠졌어요. 도대체 왜 햄릿은 저렇게 고통하고 번뇌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다시 어릴 적 그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 거죠.

왜 덴마크 왕은 유령으로 나타나 아들에게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고 한 걸까?”

 

 

그래서 연극을 보고 와서 『햄릿』을 또다시 읽었습니다. 두번째 읽을 때는 햄릿의 대사들이 모두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목소리로 들리더군요. , 서운하다구요? 그랬다면 미안해요. 하지만 이때의 베니는 당신과 동격입니다. 아마도 한동안은 그럴 것 같아요.

 

그나저나 아버지는 왜 아들에게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고 한 걸까요? 달리 말해 왜 아들의 운명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에 의해 결정되는 걸까요? 외디푸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운명의 덫에 걸린 아들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 없습니다.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의 덫에 걸린 당신을 지켜보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좀더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당신뿐 아니라 당신을 둘러싼 인물들, 그러니깐 당신의 죽은 아버지, 당신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이자 새아버지인 삼촌, 당신의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비슷하게 복수의 짐을 지게 된 레어티즈와, 연인에게 살해당한 아버지를 목도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오필리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들을 찾아 봤지요. 1948년에 만들어져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햄릿』과 멜 깁슨이 주연한 1990년에 만들어진 『햄릿』을 봤습니다. 연출자의 의도나 해석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된 인물들을 만난다면 당신과 당신의 주변 사람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니깐 최근 보름 사이에 나는 한 편의 연극과 두 번 거듭 읽은 한 권의 책, 그리고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당신을 만난 셈입니다. 조금씩 다르지만, 운명의 덫에 걸려 고뇌하는 아들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당신을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하나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던 당신의 나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햄릿, 당신은 서른이었습니다.

어떻게 알게 됐냐구요?

 

 

5 1장에서 당신은 호레이쇼와 함께 묘지 앞을 지나가다 무덤을 파고 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에게 묘파기꾼 노릇을 한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묻습니다.

그 질문에 남자가 말합니다. 햄릿 왕자가 태어난 날부터 일을 했다구요. “이곳에서 교회지기로 일한지 어, 삼십 년이 되었”(p.182)다구요.

 

그래요. 당신은 서른이었어요.

당신이 서른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거의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서른이라는 나이가 그런 나이니깐요.

 

사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한 나이로 잘 알려져 있지만,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의 서른은 그렇게 거창하고 위대하지 못 합니다. 아니, 거창하거나 위대하기는커녕 원대했던 꿈이나 이상이 사그라들고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나이죠. 현실의 부조리함과 모순을 직면하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구요. 가족 간이나 인간 관계에서 벌어지는 (애증의) 갈등이 부각되기 시작하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마치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이 목도했던 현실은 어땠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부모가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죽은 지 두 달도 안 돼서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의 삼촌과 재혼을 했으니깐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먹었던 음식이 채 식기도 전에 어머니가 결혼식을 치른 셈입니다. 그것만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유령이 되어 나타난 당신의 아버지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줍니다. 당신의 새아버지이기도 한 당신의 삼촌이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깐 당신의 삼촌은 당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당신의 어머니를 뺏은 것입니다.

 

 

그 사실 앞에서 당신은 분노하고 좌절합니다. 그 고통과 번민이 얼마나 큰지 당신은 사랑했던 오필리아와의 관계까지 끊습니다. 당신은 오필리아에게 수녀원에 가라고 말합니다. 오필리아와 결혼해서 당신처럼 죄많은 인간의 자식을 만들 것이, 그 자식에게 당신이 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업보를 지우는 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내적 고뇌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햄릿, 당신은 더 이상 사랑을 믿지 못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실망과 혐오가 모든 여성에 대한 혐오로 번졌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당신이 한 나라의 왕자라는 것도 당신의 발목을 잡습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갚아야 한다는 그 사실 자체, 그리고 그 복수라는 행위의 본질과 그것이 인간의 존재와 도덕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당신은 당신의 신분으로 인해 그 행위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까지 고려하고 염두에 두어야 했으니깐요. 햄릿, 당신이 섣불리 아버지의 복수를 하지 못했던 것은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무거움도 있었겠지만, ‘덴마크 왕을 죽여야 하는 데서 오는 정치적 부담까지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계속 머뭇거리고 괴로워하는 당신이 이해가 안 되겠지만, 적어도 당신은 의미도 없이 자꾸 일을 지연시키고 미룬 것이 아닙니다. 불안과 고통, 공포, 아직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한 예감, 죄의 가능성 등이 당신을 사로잡고 있고, 그 괴로움 속에서 당신은 자학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불안과 절망에 매몰되어 있어요.

 

물론 당신을 영웅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압니다. 당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당신은 그저 제 운명의 무게에 힘겨운 서른의 가련한 남자입니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어 힘들어하는 사람일 따름입니다. 심지어 당신은 유령의 정체까지 의심하고, 당신 스스로의 격정을 알기에 자기가 지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여부까지 의심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가여운 햄릿.

 

따지고 보면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분노하는 게 가장 쉬울지도 모르겠어요. 그거 외엔 무엇 하나 쉽게 선택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선과 악 사이에서,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실재와 허구 사이에서, 이성과 광기 사이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머뭇거리게 됩니다.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할지, 어떤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할지를 알지 못해서 말이죠.

모든 것이 사뭇 명료했던 10대와 20대와는 달리, 세상이 이분법적으로 정확하게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깐요. 서른 즈음엔. 그래서 계속 주저하며 머뭇거리게 된다는 것을, 이 나이를 사는 사람이라면 알게 됩니다.

처음엔 아주 작은 균열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종국엔 그것이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는 나이, 그것을 깨닫게 되는 나이가 바로 서른입니다.

 

 

기실 복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의도한 것은 아버지의 복수, 즉 삼촌을 죽이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연인의 아버지를 죽이고, 연인이 죽습니다. 어머니가 죽고(당신의 어머니는 죄책감 때문에, 혹은 당신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대신해서 죽는 쪽을 선택한 걸까요?), 연인의 오빠인 레어티즈가 죽고, 당신 역시 레어티즈의 손에 죽습니다. 끔찍할 정도의 파국입니다. 폐허라고 할 수 있는.

 

서른은 그런 나이입니다. 아주 작은 균열도 큰 파국이 될 수 있는 나이. 본격적으로 그것을 실감하고, 그 파괴력 앞에서 두려워하고 머뭇거리고 절망하게 되는 나이. 대부분의 서른이 그렇듯, 당신 역시 그런 서른을 지난 것입니다.

 

쇠약할대로 쇠약해져 더 이상 청년이 아닌 나이 서른’. 그래서 회의하고 주저하고 머뭇거립니다.

햄릿, 당신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혹은 그래서……

우리에겐 무엇이 남았습니까?

 

 

* 동영상 및 이미지 출처: NT Live (National Theatre Live)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nt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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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햄릿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것—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2015.10.31 02:30 댓글쓰기
  • 왕 아, 내 죄 썩은 내가 하늘까지 나는구나. 난 인류 최초의—형제를 죽인 저주를 받고 있다. 난 기도할 수 없다. 물론 의향은 의지만큼 뚜렷하나, 더 강한 죄의식이 내 강한 의도를 꺾어버리니, 난 두 가지 일에 매어 있는 사람처럼 어느 쪽을 먼저 할까 멈춰 서 있다가 둘 다 못하는구나.  저주받은 이 내 손에 형의 피가 겹겹으로 묻었다

    2015.10.31 02:30 댓글쓰기
  •  After Sir John Everett Millais (British, 1829?896) | Engraver: James Stephenson (British, 1808?886) | Publisher: Henry Graves & Company (London) | Ophelia (Shakespeare, Hamlet, Act 4, Scene

    2016.04.24 14:04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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