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카프카의 '변신'중에서)
카프카의 말에서 책의 제목을 따왔다. 자신의 독서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왜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떻게 책을 읽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책 한 장 한 장을 넘겨가다 보면 지금의 내 책 읽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내 등짝을 죽비로 내리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읽은 책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참 많이 읽었음을 은연중에 자랑하고 싶어했던 내 속마음을 꼭 집어낸다 그리고 다독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날린다. '다독은 중요하지 않아! 책은 지식만을 위해 읽는 것이 아니야! 얼어붙은 자신의 감수성을 깨뜨리는 그런 도끼가 되어야 하는 거야!'
울림이 약한 독서를 하는 많은 다독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삶에 울림을 주었던 책들을 소개한다. 강연회 내용을 정리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에서는 저자가 좋아하는 책 약 40여권이 소개된다. 일년동안 저자가 읽는 책의 권수가 이 정도라고 한다. 소개된 책의 저자는 이철수, 최인훈, 이오덕, 김훈, 알랭 드 보통, 고은, 오스카 와일드, 미셸 투르니에, 김화영, 니코스 카잔차키스, 알베르 카뮈, 장 그르니에, 밀란 쿤데라, 톨스토이, 손철주, 오주석, 법정, 프리초프 카프라, 한형조같은 분으로 동서고금의 유명한 저자들이 망라되어 있다.
강연의 내용 하나하나를 따라가다보면 책 선정은 물론 정독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의 독서법은 한마디로 지나치기 쉬운 문장들을 꾹꾹 눌려가며 읽는 것이다. 재독, 삼독은 기본이고 문장 하나 하나에 촉을 세워가며 읽어 내려가면서 울림이 오는 부분은 밑줄을 긋는다. 한 권의 책읽기가 끝나면 메모한 것을 따로 옮겨놓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재독, 삼독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을수록 새로운 울림이 오고 따라서 메모한 분량도 점점 늘어간다고 한다.
김훈을 왜 좋아하는지, 알랭 드 보통에 왜 빠지는지, 고은의 시가 왜 황홀한지, 실존주의 경향의 알베르 카뮈, 장 그르니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왜 전율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사람들의 뒷발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겸손해한다. 마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독서법은 저자에 비해 크게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것을 고백하듯이...
울림을 주는 책과 함께 하면 우리의 삶이 풍요로와진다. 풍요롭다는 것이 반드시 물질적 충족이나 세속적으로 성공한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같은 것을 접하고도 얼마나 감상할 수 있고 행복을 느끼느냐에 따라 삶의 풍요가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울림이 있는 책 읽기야말로 풍요한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의 하나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양적이고 얕은 독서를 주로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책이다. 직장인으로서 온전히 책읽기에만 전념할 수 없는 입장이라 온전히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독서를 바탕으로 이젠 울림이 있는 독서를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평가도 해 본다. 앞으로의 독서가 다독보다는 정독을, 지식의 습득보다는 감수성을 깨치는 방향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최근에 <다시, 책은 도끼다>를 출간했다.
(출처 http://blog.yes24.com/document/5829498)
이 책은 출간 당시에 감명깊게 읽은 책이다. 최근에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리뷰는 위에 보인 것처럼 이미 작성한 바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훈의 작품 소개글 중에서 가슴에 남는 구절들을 옮겨 적어 본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散華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목련은 등불 켜듯이 피어난다. (…)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얼고 또 녹는 물의 싹들은 겨울 흙의 그 완강함을 흔들고, 풀어진 흙 속에서는 솜사탕 속처럼 빛과 물기와 공기의 미로들이 퍼져나간다. 풀의 싹들이 흙덩이의 무게를 치받고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흙덩이의 무게가 솟아오르는 풀싹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풀싹이 무슨 힘으로 흙덩이를 밀쳐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물리현상이 아니라 생명현상이고, 역학이 아니라 리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