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제주도의 예멘 출신 난민을 두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어났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해온 정우성 배우가 그들을 옹호하는 소리를 내어 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 배우 경력이 상당한 그는 자신의 댓글을 다 읽지 않는 편(그의 인기를 생각하면 다 못 읽는 편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이나, 난민에 대한 자신의 댓글은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보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야 오해를 풀 수 있다고 말이다. 그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인권 감수성이 높은 연예인 한 명이 사회의식에도 크게 기어할 수 있음을, 그 가능성을 느꼈다.
안타깝게도 당시 대부분의 댓글에는 난민은 자국민의 생명권을 해치는 범죄자로 이미 낙인찍혀 있었으며, 그런 그들에게는 인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 인권은 옹호하지만 난민은 안 된다는 식일까?
거기다가 최근에 전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한 ㄱ모양에 대한 사형 요구에 벌써 20만 명이 서명을 하였다. 이런 흉악 범죄자를 우리의 세금으로 먹고 자게 할 수 없으며,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해서라도 사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나 여성의 인권은 옹호하지만 범죄자의 인권은 안 된다는 식이다.
요즘처럼 인권이 화두인 시대도 없다. 각종 인권 책이 쏟아지고 개그맨조차도 ‘여성비하발언’을 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유명 소속사의 아이돌 역시 학교폭력에 가담했다면 보장받은 ‘꽃길’에서 이제 그만 내려와야 한다. 과거와 달리 국민 대다수가 인권에 대한 의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민의 목소리도 커졌다. 성소수자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혐오댓글이 베스트로 올라가 연신 좋아요가 눌린다거나, 그에 동조하여 대댓글로 혐오발언을 늘어놓는 등의 행동들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편견이 등불처럼 혐오로 번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혐오는 결국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책의 글쓴이 말처럼 난민의 인권에 찬성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권 감수성이 낮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균형 잡힌 인권에 대한 시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다양한 대상자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고정관념, 혹은 오해는 아니었는지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권은 원하는 대상자로, 원하는 권리만 골라서 담을 수 없다.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우리에는 국민인 범죄자도, 국민이 아닌 불법체류자도 당연히 포함된다.
과연 우리들은 모든 대상자에 대한 균형 잡힌 인권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인권 감수성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또한 스파르타식 단기 속성으로도 되지 않는다. 저자는 인권감수성에 대해 ‘일상의 구석구석에 적용되는 매우 현실적인 개념’으로서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등 거창한 주장보다는 개별 삶의 현장에서 얼마나 인권의 권리가 반영되고 또 사람들이 이를 내면화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인권적인 사람이야, 나는 괜찮다고 여겼던 당신들조차도 어디서인가 걸리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개신교라서 동성애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거나,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떠올리면 생각만 해도 화가 치민다거나. 그러한 논쟁에 대해 치열한 고민과 갈등이 시작되었다면 인권감수성에도 새싹이 올라오고 있는 것일 게다.
인권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내 안에서 세상과 소통하며 내면화하는 인권이야말로 실천으로 가는 중요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인권감수성은 인권 실천으로 가는 필수적인 문고리가 아닐까.
나는 ‘인권감수성’을 내 직업과 연관하여 생각해 보았다. 다양한 대상자를 만나서 사례관리를 진행하게 되는 사회복지사에게는 무엇보다 편견이 없어야 한다. 무비판적인 사고로 대상자를 마주해야하기 때문이다. 최근 인권 교육은 각 직업군이 만나는 대상자에 대한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인시설 대상자는 노인인권만 중점적으로 하며 장애인 시설은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인권 교육이 따로 없었던 시절에 비하면 무척이나 감사하고 환영할 일이지만 이제는 균형 있는 양질의 교육을 설계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매년 하는 인권 교육이고 대상자가 같다면 교육 내용을 1회기가 아닌 매년 1회씩, 총 5회기로 설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또한 특정 대상자에 대한 인권이 아닌, 일상에서 만나는 우리 모두를 대상자로 폭넓힌 감수성 훈련을 하는 것은 어떨까?
당장 업무에 도움 될 것 같지 않은 두리뭉실한 이야기쯤으로 보이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 주제를 통해 감수성을 키운다면 교육생들은 때로는 논쟁하고 때로는 공감하면서 서로의 오해와 편견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오해와 편견. 요즘 인권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홍성수 교수 책 ‘말이 칼이 될 때’에 이어 이 책은 조금 더 읽기 편안하게 다가온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정답을 강요하진 않는다. 다만,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답을 내려서 알려주는 것보다 언제고 스스로 내면화할 시간을 주겠다고 기다려주는 다정한 책이다.
이 책이 쉽게 읽히긴 하겠으나 그렇다고 쉬운 책은 아니다. 읽다보면 내 안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되는 묘한 책이다. 그리고 내 주변의 이웃을 둘러보게 되고 한번쯤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혹시 그들을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러한 교육과 감수성이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