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새로운 한국 소설선 아르테_작은책
책을 읽으며 가끔 생각했다. 포켓 사이즈의 작은 책, 휴대도 간편하고 여행지 가는데 챙겨도 부담 없을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 아마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출판사들에서도 이러한 독자층을 겨냥한 브랜드들을 만들고 있는데 아르테 작은 책 시리즈도 가볍고 휴대하기 편한 시리즈들로 한국 소설들을 소개하는 브랜드가 출간되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책, 책소개를 읽고 궁금해서 먼저 읽기 시작했던 <안락> 어떤 책인지 몇 페이지만 보자 하고 들었다가, 다 읽어버렸다.
할머니는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가 해지고 찢긴 옷에 비유했다.
다 떨어진 옷을 억지로 기워 입듯이 매일 자신의 몸을 약으로 기워 나가고 있다는 거였다.
“이 몸으로 살날은 이제 다 살았어. 내가 질 짐도 이만하면 다 졌고, 내가 알아.”/p78
“이때가 아버지 갑자기 그렇게 보내고 얼마 안 됐을 때니까 앞으로 어떻게 사나,
그 생각에 우리 엄마 얼마나 머리가 복잡하셨을까.”
엄마는 고개를 기울여 할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할머니는 천천히 물 한 모금을 마신 뒤에
“앞으로 어떻게 사나, 하는 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죽어야 되나, 그 생각하느라 바빴어.”하고 말했다.
“너희 애비처럼 내 새끼들하고 눈 한번 제대로 못 맞추고 허망하게 가지는 말자,
그러려면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준비를 잘해야 된다, 거기서 그런 다짐을 했다.”/p135~136
젊음은 짧고, 인생은 길다.
저출산이 연일 뉴스에 조명되면서 함께 이야기되는 고령화 인구의 증가. 사람도 사회도 나이 들어가는 2029년 '안락사 합법화' 법안이 발의 된다는 가정에서 진행되는 글은 찬성과 반대, 어느 편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금래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기한을 가족에게 선포한다. 5년 내에 주변 모든 것을 깔끔하게 자신의 손으로 정리하고 떠나고 싶다고. 이 소식을 접한 가족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글을 읽으면서도 건강한 삶을 살다가 내가 원하는 시기에 생을 마감한다는 것, 어쩌면 멀지 않은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튿날, 나는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못 돼서 눈을 떴다. 할머니의 임종 스케줄은 오후 네 시에 잡혀 있었으므로 이별까지 아홉 시간이 남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셈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할수록 긴장이 됐고, 그러자 시간이 몇 배는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p138~139
5년이라는 시간을 선언하고 그동안 꾸준히 주변 정리를 해온 할머니에게도 세월의 흔적은 찾아왔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거동은 점점 불편해지고 시간이 더 흐르면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의사표현이나 행동을 못하는 시기도 올 것이다. 가족이기에 엄마의 할머니의 장모의 이러한 결정이 불편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금래 할머니가 마지막 주변정리를 하며 요양원에 누워 몇 년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언니를 만나고 돌아오는 대목에서 아연해졌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여한이 없어. 하나 있다면 우리 언니랑 같이 못 가는 거, 그건데. 그건 내가 먼저 가서 힘 좀 써봐야지." /p147 갑자기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할머니도 충분히 생각하고 자신의 남은 시간을 자신이 결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입장에서 수없이 생각하고 생각해봤다. 연세 들어가시는 내 부모님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봤다. 내 엄마가, 아빠가 이런 결정을 내리고 통보하신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막상 닥친다면 누구보다 반대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 생은 아니지만 마지막은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면,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을 그리고 가족들에게 인사해야할 사람들에게 이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네 시 정각, 김 선생이 엄지손가락만 한 시약병을 들고 안방으로 건너왔다.
시약병에 있는 반투명한 액체를 따른 잔을 쥔 할머니는 곧장 잔에 든 액체를 입안에 흘려넣었다.
"다들 애 많이 썼다. 고맙다."
그 말을 끝으로 서서히 할머니의 눈이 감겼다.
나의 할머니 이금래 씨. 할머니는 오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집안일을 도왔고,
유년 시절 내내 동생들을 건사하느라 분주했다. (중략)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순간, 할머니의 표정은 편안했다.
'개운하게 가겠다'라던 결심이 그대로 이루어진 듯 모든 짐을 내려놓고 떠나는 할
머니의 입 끝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p148~149
할머니가 자신의 몸에 노화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이별을 차근차근 준비해 가는 과정이 싫지만은 않았다. 막연하게도 상상이 되지 않는 '죽음'을 준비하는 본인에게도 절대 가볍고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글로 써낸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을 뿐이다. 묵직한데, 또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았고 참 좋은 책을 읽은 기분... 이 책은 읽고 이야기하고 생각할 거리를 꽤 많이 던져주는 소장가치 100000%의 글이었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