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새로운 한국 소설선 아르테_작은책
책을 읽으며 가끔 생각했다. 포켓 사이즈의 작은 책, 휴대도 간편한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 아마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출판사들에서도 이러한 독자층을 겨냥한 브랜드들을 만들고 있는데 아르테 작은 책 시리즈도 가볍고 휴대하기 편한 시리즈들로 한국 소설들을 소개하는 브랜드가 출간되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책, <인터내셔널의 밤> 은 '어떻게 주민등록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수 있을까.' 라는 두 줄의 글로 더욱 궁금해졌던 책이기도 하다.
기차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옛날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를 것이다. 가끔은 다른 이름으로도 부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사람들은 옛날이야기를 수도꼭지 돌리면 물이 나오는 것처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다가 기차를 타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을 옆자리 직원이나 은행 창구 담당자로 만나면 화가 날지도 모른다. 그들은 책을 읽고, 책 속의 사람들과 친하고,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p7
과거를 말하는 사람은 책을 읽을 수밖에 없나 봐. 책을 읽는 사람은 먼 훗날을 말해도 옛날이야기처럼 시작했다. /p10~11
한솔은 일본에서 결혼하는 친구 영우의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 길을 긴 여정에 나선다. 한솔이 영우의 결혼식을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들을 떠올리다 멈추었던 건 왜일까? 보통 먼 길을 떠나면 주민등록증이나 여권을 제시하는 과정조차 설렘이다. 나를 증명하고 어딘가를 다녀왔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것, 흔적이랄까? 그런데 한솔은 이러한 과정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서 만난 나미는 종교단체에서 도망쳐 숨으러 가는 길이었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 낯선 생각
결혼식에 가기 위해서는 여권을 갱신해야 했고 그전에 사진을 찍어야 했다. 사진과 주민등록증을 근처 관공서에 가져가야 했다. 주민등록증과 실제 자신을 대조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몇 번을 거쳐야 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모든 것을 가지고 일본의 공항에서 그 질문을 마주하는 장면을 생각했다. 마주하는 것? 맞닥뜨리는 것? 그 질문이 찾아오는 것? 혹은 그 질문이 떨어지는 것, 갑자기 휘몰아치는 것? /p14
이곳에서의 흔적을 지우고 나를 모르는 이들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한 번쯤 해보게 되는 생각이 아닐까?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주민등록으로부터의 도망에 성공한다고 행복해질까? 어쩌면 순간의 만족은 하겠지만 새로운 곳에도 또 다른 규제가 있지 않을까? 사실 읽으면서 좀 난해했다. 길 위에서 만난 여행자들의 이야기 일 거라고 막연한 생각으로 읽기 시작한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어디까지 갈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저는 정미나입니다 사실 최유리이지만, 저는 김소현입니다 사실 유민지이지만. 그렇게 말해도 숨을 수는 없었다. 이름을 감추고 여러 가지를 속여도 주민등록은 지나치게 촘촘했다. 모두 때가 되면 관공서로 가 지문을 등록하고 피할 수 없는 국민의 망 속으로 들어가니다. 어떤 식으로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요? 누구는 사기를 치고 해외로 도피하고 여권을 위조하고 얼굴을 바꾸고 그렇게 살아가기도 한다고, 그렇지만 그렇다는 것은 밝혀져버렸다는 것이잖아요? 어떻게 주민등록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매일 밤 잠자리에서, 물론 매일 밤은 아니지만 자주 반복되는 생각이었다. 사라질 생각은 없지만, 큰 잘못을 아직 저지르지 않았지만 어떻게 한국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숨을 수 있을까 혹은 한국을 빠져나가 외국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p36~37
책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사라지고 지나간다. 어떤 함께하던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헤어지게 되는데 그걸 슬퍼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어떤 것들은 이미 몸으로 변해버려 흔적이 없어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헤어짐은 있다. 한솔은 열여섯 열일곱에 읽던 책들을 지나가며 아 이미 헤어졌군 우리는 헤어지고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만나지 않게 된 사람들도 가끔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89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정말 단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변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들, 헤어짐, 낯선 곳으로의 도피, 만남 이러한 것들은 어쩌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살아가며 겪어가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2018년은 며칠 남지 않았고 2019년의 나는 예전의 나일까? 새로운 나일까?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